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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Aug 25. 2016

#56. 두브로브니크의 거리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여행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말벌에게 따끔 한 환영을 받은 후 숙소를 찾아 나선다.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지만 걸을만하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입은 부상이다. 두브로브니크 역시 우선은 무작정 찾아온 곳이라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지나가다 만난 한국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숙소를 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본인이 묵었던 곳이 항구에서 가깝고 괜찮다고 하신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 다시 길을 떠나신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였는데 혼자 오셨나 보다. 멋지시다. 나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숙소를 찾았다. 그런데 하루만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다시 길을 나서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나는 예약을 하고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원은 잠시 놀란다. 빈자리가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한 후에 가능하다는 답을 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나지막이 내뱉고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기쁘게 대답했다. 체크인 시간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아서 나는 배낭을 맡기고 구시가지로 나섰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구시가지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빛이 당연히 바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궁금해진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자 오른쪽으로 거대한 바다가 펼쳐졌다. 아드리아 해이다. 눈이 부시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진정한 ‘Blue’를 뽐내고 있다.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파란색을 내뿜고 있다. 순식간에 기분이 최고조에 오른다. 귓가에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본 조비의 노래 ‘It’s my life’가 울린다.





시원한 바다와 함께 내 몸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하다. 내 발걸음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9년 전 호주 골드코스트의 바다에서 맛봤던 기쁨과 비슷하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해변을 걷는 즐거움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때의 기쁨을 다시 다른 곳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연신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본다. 아드리아 해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필레 문 앞에는 시내버스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나도 이 아름다운 관광지에 함께 조화롭게 어울리고 싶은 설렘 기분 좋게 느껴진다. 필레 문으로 들어서면 구시가지에서 가장 번화가가 나온다. 플라차 대로다.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번화하고 큰길이라고 하지만 귀엽기만 하다. 이 대로는 원래 바닷물이 흐르는 운하였다고 한다. 성채도시로 계획되면서 바다가 메워졌다.





플라체 대로가 시작하는 부분에는 분수대가 하나 있는데 그 모습이 재밌다. 오노프 리오스 분수는 20km나 떨어진 스르지 산에서 물을 끌어들인 수도시설이다. 수도꼭지의 얼굴 모양 독특하다. 물맛이 좋다. 따가운 햇살과 함께 갈증도 함께 느꼈던 나는 시원하게 물을 목으로 넘겼다.





14세기에 지은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잠시 둘러본 후 플라차 대로를 계속 따라가 본다. 작은 골목들에는 레스토랑의 테이블들과 맛있는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플라체 대로 끝에는 성 브라이세 성당과 총령의 집무실이 있다. 두브로브니크에는 1667년에 지진이 있었다. 그 피해로 다시 지어진 건물들이 대부분인데 성 브라이세 성당은 바로크 양식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총령의 집무실은 행정기관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인 7개의 기둥과 아치로 이뤄져 있다. 15세기의 조각들로 장식된 외관도 볼만하다. 총령의 집무실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대성당에 잠시 들어 고요한 성당 안에 앉는다. 나는 여행지마다 가는 성당에는 꼭 한 번씩 앉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성당 안에 앉으면 그 고요함이 정말 안락하고 좋다. 천천히 여행을 즐기라는 소리 없는 속삭임이 들리기도 한다. 앉으면 여행을 이어가는 내 두 다리는 휴식을 취하고 여기저기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안정을 취한다.           



총령의 집무실
대성당



성벽 밖으로 나가자 항구가 있다. 대도시의 항구처럼 크지 않지만 아름답다. 보트 투어를 위한 작은 보트들이 보이고 저 멀리 산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상징처럼 붉은 지붕의 집들이 많다. 항구에서 바라본 아드리아 해 바닷물은 코발트 색이다. 눈으로도 맑은 게 보인다. 항구 한쪽 구석으로 가자 이 맑은 물에 수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 나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벤치에서 바다와 항구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다시 구시가지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는 작은 골목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미로와 같은 골목들에는 작은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고 높은 지대에는 가정집들이 많다. 빨래를 널어놓은 모습도 예쁘다.





바삭한 오징어 튀김은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배가 고팠던 나는 오징어 먹물 해산물 리조또를 흡입한다. 짜지 않고 걸쭉한 오징어 먹물이 잘 어우러져 고소한 맛이 난다. 오랜만에 맛보는 해산물에 흥이 절로 난다.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맥주가 비었다. 한 잔 더 주문했다. 괜히 아이처럼 몸을 좌우로 흔드는 나를 발견한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고, 마시는 공기의 분위기가 좋고, 나는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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