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다카우 수용소, 작센하우젠 수용소
유럽 배낭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유럽의 강제수용소에 가는 것이었다. 나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 뮌헨에 있는 다카우 수용소, 베를린에 있는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참혹한 역사를 힘겹게 다시 보거나 유대인의 삶을 내가 연구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빅터 프랭클 박사님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가 있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느껴보고 싶었다. 잠시라도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읽으며 그를 만났다.
< 빅터 프랑클의 로고테라피 >
이 정신과 의사는 빅터 프랑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년)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의과대학에서 정신과를 전공했고 특히 우울증과 자살에 관심이 많았다. 초기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년)와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평소 호기심이 많던 프랑클은 용감하게 프로이트에게 자기 생각을 편지로 보냈고, 프로이트도 상냥하게 답장을 줘서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또 17세 때 학교 숙제로 쓴 논문이 그가 19세 되던 해인 1924년에 《정신분석 국제 저널(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에 발표된 적도 있었다.
1937년 정신과 전문의가 된 빅터 프랑클은 3만 명의 자살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을 관리·치료했고, 이후 자신의 클리닉을 개업했다. 정력적으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기 시작할 때,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해 버렸다. 이때부터 유대인 의사들은 순수 독일민족 ‘아리안 족’의 치료를 금지당했고, 이후에는 유대인만 치료할 수 있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다. 우생학적 관점을 앞세워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희생될 위험에 처한 수많은 유대인 환자들을 자신의 의학적 소견으로 구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에도 1942년 9월 결국 그는 아내, 부모와 함께 테레지엔슈타트의 유대인 거주지 ‘게토’로 강제 이송되어 일반의로 근무했다. 이곳에서도 그는 열정적으로 자살 방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람들이 강제 수용된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도록 강연해 나갔다. 늙은 아버지의 사망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프랑클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반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와 면도를 했다.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면도를 거르지 않았고, 덕분에 건강해 보일 수 있어서 가스실로 가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남았지만 2년 후 그와 그의 아내는 1944년 10월 19일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옮겨졌고, 여기서는 의사가 아닌 일반 수용소 수감자로 강제 노역을 했다. 1945년 3월에야 튀르크하임의 수용소로 옮겨져서 1945년 4월 27일 전쟁이 끝나 해방될 때까지 의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센 수용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사망하고 말았고, 어머니 엘사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동생 월터는 강제 노역 중에 사망했다. 유일한 생존자인 여동생 스텔라는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 살았다. 프랑클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 각기 다른 수용소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견뎌나가야만 했다.
* 출처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1&contents_id=78720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
< 다카우 수용소에서 >
<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
* 다카우 수용소 박물관에서 구입한 책 <죽음의 수용소>의 영문판
책에서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다카우 수용소에 있었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는 몇몇 서브 수용소를 거쳤다. 내가 베를린에 갔을 때 작센하우젠 수용소와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들렀다. 그곳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를 만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용소라고 나오진 않지만 어느 수용소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속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귀도는 강제수용소에서 아들 조슈에가 집에 가자고 할 때 이렇게 말한다.
"네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귀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함을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고귀하게 보여준다.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공학자인 나와 빅터 프랭클 박사와 귀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글을 써보고 싶다.
여행을 통해 나와의 약속도 지켜서 뿌듯하다. 나는 빅터 프랭클이 말한 의미를 삶에서 공학적으로 연결해서 성장법으로 발전시켰다. 새로운 동기부여와 자기계발 방법으로써의 '의미공학'을 통해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