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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Jun 19. 2016

퇴사 후의 열정

이 또한 소중한 경험과 성장의 과정이다

내 나이 스물여덟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가장이 되었다. 누나도 결혼을 하지 않았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가장이 되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와 누나를 지켜내기 위한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에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큰 조직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사회에 스며들었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는 가장으로서 일을 했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어머니도 살폈다. 당신이 살아온 날의 절반 이상을 함께했던,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진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다섯 시간 동안 이동해서 어머니와 밥 한 끼 먹는 것이었다. 엔지니어로서 지방근무를 하며 나는 매주 서울에 왔다.      


직장에서 나는 매일같이 야근하며 일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그 끝은 회의로 가득 찬 절망이었다. 계속 일해봤자 일만 하다 돌아가신 가장, 아버지처럼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겨냈다. 가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어떤 포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3년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지만 무언가 초점이 흐릿한 듯했다. 왜 흐릿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기에 우리 가족은 서로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만 했는데, 그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그냥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기를 함께 원하고 있었다.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히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회사의 부속품처럼 일을 하고 주말이면 서울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주말에 회사에 불려나오기도 수십 번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어느덧 대리로 승진했다. 그리고 2년을 더 일하고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나에게 2년간의 방학을 선물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조금 쉬어도 된다고 나를 토닥였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지 한 달 후에 나의 가정에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나는 절망했다. 난 열심히 사는데 왜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냐며 나는 세상을 원망했다. 그동안 버텨온 것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땅바닥에 무릎을 댈 수 없었다. 나는 폭풍이 휘몰아친 그 날, 엄마와 누나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엄마가 아흔 살이고 누나와 내가 칠십대라고 해보자고 했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당장 내일, 엄마와 그리고 누나와 함께 저녁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몰아친 폭풍이 엄마와 누나에겐 얼마나 더 시리고 아팠을지를. 절망스러웠지만 나는 땅바닥에 무릎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 일 년 반 동안 나는 더 열심히 살았다. 그 전까지도 정말 열심히 살았었는데, 퇴사 후 나는 쉼 없이 더 열심히 살았다.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친구 놈들은 나에게 직언했다. "너 언제까지 그렇게 집에 희생하며 살 거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도 어려운 일도 또 있겠지만, 우선 여기까지다. 나에게 마련한 방학에 어려운 일이 닥쳤지만 그래서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기간 안에 나는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달렸다. 그리고 이제 그 목표를 이뤘다. 공동의 목표였다. 이제 남은 방학은 나의 목표를 위해 쓸 것이다. 여행을 가고 여행 후에는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재취업에 성공해서 다시 직장생활을 해나갈 것이다. 직장인으로 내가 꾸릴 가정을 위해 성실하게 살고 싶다. 그래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도 부끄럽지 않다.      


나에게도 여유를 주라는 주위의 애정을 나는 감사하게도 정말 많이 받았다. 과정에서도 그 애정을 나에게 풀어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녹여냈다. 사실 나는 요즘 행복하다. 열심히 살고 성취를 해서라기 보다는 아주 사소한 행복을 느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가족끼리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는 행복, 예전에는 묻지 않던 가족 간의 질문과 대답이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가장 큰 수확은 가족의 대화가 진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노력한 덕분이다. 매일매일 작은 행복을 서로에게 선물해준다. 엄마가 웃고, 누나가 행복해할 때, 즉 가족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정말 행복하다. 물론 나는 몇 년 내에 독립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의 보금자리에서 내가 꾸린 가정에서 나의 가족을 보살필 것이다. 때가 되면 그렇게 하겠지만, 일 년 반 동안 얻은 이 보물들이 나는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누구에게나 있다. 과거에 그랬었고, 지금이 그럴 수도 있다. 상대적이다. 비교는 의미 없다. 그렇지만 각각의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힘을 내고 있다. 때로는 성공한 사람의 역경 극복 사례를 보며 감동한다. 지식공유시대인 지금, 유명한 감동스토리는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오히려 일반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고 더 감동한다. 그 감동으로 내 삶을 돌아보며 내가 힘을 낸다. 이것이 중요하다. 내 삶에 어떻게 비춰보는지에 따라 내가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역경은 있고, 그 의미는 스스로가 만든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역경은 있고,
그 의미는 스스로가 만든다. "     
- 빅터 프랭클 -     


우리가 직면하는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환경적, 관계적, 신체적 등의 상황이다. 신체적인 역경에 직면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든 위대한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직접 말해준다. 그 외의 환경적, 관계적인 부분에서는 주로 가족사가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가족사가 있고 말할 수 있는 수준도 각자 다르다. 진정한 공감의 측면에서 누구의 가족사든 더 불행하거나 슬픈 건 없다. 상대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철이 없던 시절, 나는 잘못된 그 비교를 했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는 노점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셨다. 사춘기였던 나는 창피하다고 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긍정으로 키우셨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수십 년간 재봉공장에서 먼지를 마셔가며 재봉일을 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도 재봉일을 그만두셨다. 지겹다고 하셨다. 얼마나 지겨우셨을까. 그리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먼지를 마셔가며, 악덕 사장의 욕을 들어가면서 말이다. 어머니는 그 후로 청소일을 시작하셨다. 용역 업체에 등록을 하고 프리랜서 청소부가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뭐라도 하시면 좋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힘든 일을 하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어머니는 매일매일이 여행 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부자동네도 가보고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사는 동네도 다니며 느끼는 게 많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이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집들을 다 가봤다.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모 기업의 역대 회장님 댁, 역대 장성들의 집 등을 가봤다며 나에게 자랑했다. 긍정적인 어머니를 통해 나는 여전히 많이 배운다. 어머니 이야기는 그만해야겠다.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즐겨보시며 계속 이러면 장가 못 갈 것이라며 핀잔을 주신다. 그리고 집에서 나가 독립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 바람대로 할 것이다. 나 역시 역경을 불행자랑으로 여기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교도 아니고 불행자랑도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여기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지금 나는 나의 과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누가 더 힘든 역경이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역경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나의 발을 한 발 앞으로 내딛으려는 의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남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경쟁하려는 의사가 아니다. 불행으로 우월성으로 추구하지 않으며, 단지 조금씩이라도 한 걸음 내딛으려는 의지와 용기를 낸다. 그것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삶은 재미없다. 많은 시련과 아픔 속에도 이겨내고 극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기쁨 역시 인생의 재미이다. 그리고 이를 즐기는 지혜가 미소와 함께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나는 카페 1호점 인수 8개월 만에 이어 2호점 창업에 도전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나는 내가 만들어낸 카페 2호점을 누나에게 양도했다. 목표 매출을 달성해서 누나에게 줬다. 나는 매우 기뻤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성수기를 맞이한 지금 매출은 목표 대비 150%까지 올랐다. 경쟁업체가 많았던 2호점 상권에서의 성공은 정말 달콤하게 값진 느낌이다. 퇴사 후 일 년 반 동안 누구보다가 아닌 그 전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물을 나누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 값진 경험을 얻었다. 나는 그 경험을 글로 남겼고, 그 글은 나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은 운 좋게도 Daum ‘창업과 스타트업’ 누적 조회수인 인기 순위 1위도 했었다. 인생은 참 재미있고 감사할 일들이 많다. 1호점을 Full Auto로 만들고 나는 관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동안의 열정에 대한 치유로 유럽 배낭여행을 선물했다. 이제 2주 후면 떠난다. 여행 후에 나는 그동안의 경험과 성장 그리고 새로운 눈을 갖고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다시 직장인이 되어 살 것이다. 2년간의 방학을 마치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간다. 그때도 계속 삶은 이어진다. 그게 인생이다.




* 이미지 출처: 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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