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퇴사한 지 3년이 흘렀다. 시간은 다시 속절없이 흘렀고 3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매년 이어지는 일들이 다시 각인시켜 준다. 한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늦은 귀가를 했다. 집에 도착하니 감 한 상자가 있다. 광양에서 온 감이 들어있는 상자다.
"아, 또 1년이 흘렀구나."
홀로 내뱉은 말 넘어 내 머릿속에는 따뜻한 감정과 감사한 마음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내가 퇴사한 이후로 매년 가을, 감을 수확하는 시기에 감 한 상자를 보내주시는 분이다. 첫 직장인 철강회사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할 때 함께 일했던, 현장에서 근무하시던 주임님이다. 내가 대리로 승진해서 생산 공장의 기술원으로 파견됐을 때는 주임님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주임님은 현장에서 주임으로 일할 때나 사무실에서 총괄 업무를 하실 때나 늘 긍정적인 책임감을 보여주는 분이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설비 문제에도, 당황스러운 품질 문제에도 맡은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강한 책임감을 보여주시면서도 긍정성을 잃지 않으셨다. 회사와 조직에서의 수많은 일을 해나갔고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회상해보면 이렇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도 힘들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헤쳐나갔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해낸 그 과정이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 다시 꺼내도 기분 좋아지는 선물과 같다. 그런 선물과도 같은 분이 매년 이맘때 댁에서 직접 수확하신 감을 보내주신다. 감사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다. 나는 안부 인사를 자주 드리지 못했던 나의 게으름에 이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휴대전화를 들어 주임님께 전화를 한다.
"재천, 목소리 좋네. 목소리 들으니 기분 좋다 야!"
여전히 긍정적이고 호탕한 주임님의 웃음소리에 삶의 고뇌가 눈 녹듯 사라진다. 나는 거듭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조직에서 나왔고 관계가 끝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먼저 챙겨주는 점에 깊은 감사의 표현을 했더니 주임님께서 나를 더 감동시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한 번 맺은 인연은 끊기 어렵더라. 하하하.”
짧은 순간 나는 울컥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리고 옛 생각을 했다. 제조업 엔지니어로 일하면 반드시 현장에서, 현장과 함께 일을 한다. 제조업에서 현장은 매우 중요하다. 삼현(三賢) 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현장, 현물, 현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고,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역시 현장에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현장이 없이는 고객에게 제공할, 회사가 판매할 제품을 생산하지 못한다. 제조업의 핵심이고 업의 영역이 현장이다. 그만큼 중요한 현장을 책임지고 움직이는 분들이 현장 주임님과 반원들이다. 엔지니어의 직무에 있어 현장과의 소통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업무성과가 좌우되기도 한다. 현장과의 소통 없이는 어떠한 개선도 혁신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경험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떠오른다. 현장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다. 그저 평범했던 일상의 시간이다. 한 번은 팀장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고 현장에 갔다. 팀장님으로부터 들은 질책에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에 휩싸여 밥도 안 먹고 그냥 현장에서 한참 동안 생산 공정을 지켜보다가 현장 운전실에 들어섰다. 현장 주임님과 반원 분들께 인사를 하자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이 들려왔다.
“밥은 먹었는가?”
밥은 먹었냐는 보통의 말에 담긴 따뜻한 마음은 나를 여러 번 감동시켰다. 팀 사무실에서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자주 녹아 없어졌다.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말씀을 더 잘 하시거나 표현력이 풍부한 것도 아닌데, 신기할 정도로 많은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랬다. 겉으로 얼마 만큼이 나타나고 보이느냐보다 진심으로 얼마나 전달되느냐가 더 중요했다. 나는 그렇게 큰 선물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6년간 현장과 함께 일했다.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의 성패는 그 관계가 끝난 이후에 드러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 광양에서 온 감 한 상자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 관계의 성공은 분명 나로 인한 것이 아닌 주임님 덕분이라는 것을. 그분께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더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퇴사 후 3년, 나는 지금
퇴사 후 나를, 시간을 돌아보는 글을 두 편 썼는데 모두 성과 중심이었다. 조직에서 나와 세상의 풍파와 부딪히며 무엇을 해내야 할지 고민하고, 또한 무엇을 해내는 과정은 조직에서 그랬던 관성이 작용했다. 덕분에 귀한 성과를 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성장했다. 목표와 성과는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나름대로 목표한 것들을 해내고 있어서 그런지 ‘퇴사 후 3년’이라는 글은 성과가 아닌 다른 주제로 쓸 마음이 먼저 든다. 그 마음의 내용물은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의 방향이다.
퇴사 후 3년 사이에 대학원을 졸업했고, 다른 조직에서 일을 해보기도 했고, 작은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일을 하고 있다. 계획했던 책을 내고 코치로서 코칭을 하고, 강사로서 대학과 기업에서 강의를 하고, 교육 기획자이자 진행자로서 하고 싶었던 교육업(業)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일’이라는 영역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정립한 후에 지금을 살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과정에는 경험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경험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만들고 생산해내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이 역시 계속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다. 새로운 고객과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적용해보는 일을 한다. 그 일은 고객뿐만 아니라 나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을 하면 할수록 내 것이 된다. 물론 직장생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지만 어떠한 가치를 중심으로 얻어내느냐가 다르다. 그 가치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개인에 따라 과정에서 느끼는 장단점, 편하고 불편한 정도 등의 기회가 있겠지만, 무엇이 더 낫고 덜하고 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어떤 가치와 가치관을 갖고 추구하느냐의 차이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민이 없는 시기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민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고민은 늘 생기고 하게 되는 것일 거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 고민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지?” 독일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지금도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이 과정이 또한 나의 삶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퇴사 후 3년, 나는 지금을 바라보고 느낀다. 퇴사 후 1년 후와 비교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지금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금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여러 가지 영역에서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하고 있지만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가볍다.
퇴사 후 3년, 앞으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계속해서 고민을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 단독자로서 던지는 이 질문은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고민과 대답의 과정에서 값진 조언을 수용하고 나에게 적용하고 성찰할 것이다. 나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만족할 만한 전략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한 교육회사 대표님과 종종 만나면 삶을 나눈다. 삶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삶에 대해서 거창하게 혹은 깊숙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나눈다. 하지만 소소함에 깊이가 있다.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참 행복하고 소중하며 감사하다. 잠시라도 이런 이야기를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득 큰 만족감과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도 자주 전화통화를 하며 일상을 나눈다. 별일 아닌데도 상대의 안부와 안녕을 물어봐주고 살펴준다. 인간애(humanity)를 발휘하려고 마음먹지 않아도 이런 나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애가 발휘된다. 그 시작이 이 사람에 대한 감사이다.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족은 더더욱 서로 표현을 잘 하지 않는데, 먼저 표현을 시작하면 달라진다. 한편으로는 인생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럴 때, 가족에서 조금 더 표현해본다. 더 표현하고 더 아끼며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선물하고 느끼며 살아야겠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지방근무를 하며 주말에만 와서 필요한 말만 했던 나를 기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렵지만 익숙하지않은, 편하지 않은 그렇지만 더 소중한 선택을 했다. 오늘,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며 그러길 잘했다고 다시 한번 나를 격려한다. 오늘 문득 어머니의 몇 년 전 사진을 봤는데 몇 년 사이에 많이 늙으신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월이 야속했다. 하지만 오히려 감사했다. 더 표현하고 더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 느끼고 함께 하며 살면 된다는 점을 알게 해줘서 감사했다.
이렇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론 앞으로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서 또한 노력하며 그리고 과정을 즐기며 갈 것이다. 그런데 그 전 보다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고 경험을 통해서 더 많이 성장하는 방법이다. 과정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다. 이 길은 그리고 그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나의 상태를 바라보며 가는 것이다. 이를 ‘조절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혼자 가지 않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갈 것이다. 그래야 의미 있고 재미도 있다. 함께 나누며 가는 즐거움을 오늘도 느낀다. 이 과정에서 역시 조절감을 배운다. 나를 알고 상대를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는 과정이 만족으로 다가온다.
조절감은 만족스러운 감정과 행복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조절감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어지는 만큼 조절감 역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조절감을 바탕으로 만족스러운 선택과 소소한 행복의 이유를 추구해 갈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자주 나누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