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달려준 기차야, 수고했어!
폴란드로 향하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프라하 중앙역으로 나간다. 안녕! 프라하! 며칠 사이 정들었던 프라하와 작별이다. 언제 또 올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또 오겠지. 내가 떠난다고 한바탕 비가 쏟아지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날씨가 또 맑아졌다. 프라하의 마지막 선선한 저녁 공기를 힘껏 마시며 중앙역으로 향한다.
아직 플랫폼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있어야 한다. 처음 타보는 야간열차라서 살짝 긴장된다. 특히 도난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배낭을 단단히 싸고 중요한 소지품을 몸에 지녔다. 한편으로는 침대칸으로 예약한 야간 열차가 기대된다. 옆의 칸에는 어떤 여행객이 탈까? 잠은 잘 올까? 자잘한 생각들이 지나간다.
폴란드 크라쿠프로 가는 길에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읽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폴란드에 가는 이유는 빅터 프랭클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폴란드 크라쿠푸는 아우슈비츠 수용수가 있는 곳이다. 그의 책을 다시 읽으며 그리고 강제수용소에 가서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감히 느껴볼 생각이다. 의미라는 큰 주제를 나에게 주신 빅터 프랭클 박사님을 곧 만난다.
폴란드행 야간열차의 플랫폼 번호가 안내판에 뜨자 여행객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나도 그들을 따른다. 플랫폼에는 나를 폴란드로 실어다 줄 열차가 든든하게 서 있다. 승무원에게 호차 번호와 좌석을 확인받고 기차에 올랐다. 내부는 3층 침대 칸으로 되어 있는데 내 자리는 상석인 가운데 칸이다. 3층은 올라가기 쉽지 않고 1층은 바닥과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덜 쾌적하다. 2층은 눕고 다시 빠져 나오기 쉽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1,2,3층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내가 처음 타보는 침대 칸 야간 열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그 구조가 함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해군 군복무 시절 함정근무 당시 배 안 침실 구조가 이와 같았다. 오랜만에 그 구조을 보니 추억에 젖는다.
함정근무 당시 나는 이병 그리고 일병이었는데 막내라서 3층을 사용했다. 잠을 자다가도 언제든 비상상황이나 입,출항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점호 시간에는 누워서 번호를 대야했는데 무척 힘들었다. 고단한 몸을 눕히고 당직사관 올 때까지 버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혀를 꽉 물어 잠을 쫓다가 당직사관이 도착하면 점호 번호를 힘차게 소리쳤던 때가 떠올랐다. 벌써 13년 전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침대 칸에서 흥겨우면서도 소란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들 처음 경험하는 침대 칸 야간열차에 약간은 흥분한 분위기다. 내가 탄 침대 칸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커플과 다른 외국인 두 명의 친구가 탔다. 네덜란드 남자는 여자친구 침대의 시트를 끙끙대며 깔아주었다. 그리고는 난방을 점검했는데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지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지 내가 봐주었다. 흐뭇한 표정의 네덜란드 남자는 이제 자신이 잠 잘 침대를 정리한다. 좁은 공간에서도 잠 잘 공간을 손보고 배낭을 한쪽으로 정렬했다. 잠시 후 열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한다. 마치 설국열차라도 탄 듯이 신난다. 열차가 속도를 붙여가며 안정적인 덜컹거림으로 소리가 바뀐다. 야간열차는 낭만도 있어서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탄다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에어컨이 시원치 않지만 밤이라 그렇게 덥지 않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글자를 두드린다. 지금 이 글이다.
바로 잠이 올 것 같진 않지만 일어나면 아침 7시 22분에 폴란드에 도착한다. 기차는 8시간 달리고 나는 몇 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잠을 청해본다. 생각보다 안전해 보이는 침대 칸에서 유럽여행의 한 밤을 보낸다.
드디어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새벽 4시 반에 경찰의 불시 여권 검사 덕분에 잠시 깬 것 말고는 나름 괜찮은 밤이었다. 개운한 기분으로 크리쿠프 역에 도착했다. 다른 여행객들도 신나는지 기분 좋게 역을 나선다. 첫 야간열차의 경험은 안전했고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숙박비도 아끼면서 이동 시간도 절약하는 괜찮은 수단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폴란드로 나를 데려다 준 밤새 달린 기차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