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 리뷰
영화 <로마>는 오래 계속되는 바닥 청소 장면으로 시작한다.
관객의 머릿속에 '대체 언제 이 장면이 끝나지?'하는 물음이 대여섯번 들 때까지 이어지는 이 씬(scene)은 청소하는 사람을 직접 비추는 대신, 타일 바닥을 비질하고 물을 뿌리는 소리와 함께 비눗물이 한차례씩 하수구일 어딘가를 향해 쓸려 내려가는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조금씩 더 많은 양의 물이 바닥을 흐르며,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화면에는 물에 비친 하늘과,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가 잡힌다.
묵묵히 현관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이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1970년대의 멕시코시티 로마에서 하녀 일을 하고 있는 클레오다.
영화가 시작하고 몇분 동안 보여지는 클레오의 일하는 모습은, 영화 내내 계속해서 등장한다. 우리는 클레오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몫을 하거나, 자기 전 집안을 한바퀴 돌며 일일이 불을 끄고, 집안 사람들이 외출하고 귀가할 때마다 몇 번이고 개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잡거나 대문을 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본다. 아무 의미도 재미도 없는 장면을, 사물과 사람이 묻히는 흑백의 화면으로, 느리게 본다.
그리고 그런 클레오에게서 풍겨오는 어떤 단단함이나 꿋꿋함은, 삶을 살아가는 것에 수반되는 반복, 어쩌면 그 자체로 노동일 반복을 수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아우라다. 이 아우라는 또한 이 수난 많은 영화의 전체를 꾸준하게 감싸고 도는 힘이기도 하다.
영화는 클레오와 함께 그의 주인인 소피를 담는다. 영화에서 두 사람의 존재는 여성이라는 지점에서 묶이면서, 인종과 계급에서 나뉘며 교차한다.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가 크게 두번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교차성을 감각할 수 있다.
클레오와 소피는 각각 임신 사실을 알리자 도망친 뒤 다시 찾아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연인과 외도에 빠져 가정을 떠나는 남편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들을 곧바로 여성으로서 연대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관계 국면의 첫번째 변화는, 클레오가 임신 사실을 소피에게 알렸을 때 찾아온다. 영화에서 클레오는 임신 사실을 알리면 소피가 자신을 해고하리라 생각해 두려워한다. 그러나 내내 그다지 좋은 주인인 것 같지 않았던, 하인들에게 전기를 아끼라고 잔소리하고 감시하는 것으로 조롱받던 소피는 뜻밖에도 클레오를 해고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고, 병원 검진에 데려간다.
그리고 소피가 이처럼 클레오를 돕기로 했을 때, 흑백의 인물들 중 하나로 묻혀있던 소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그녀에게 처음으로 얼굴이 생긴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영화의 인물들은 이렇게 관계를 통해서 얼굴을 갖게 된다.
소피가 클레오를 돕기로 했다고 해서, 그들의 수직적인 관계가 단번에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소피는 클레오의 주인이고 원하면 어느때고 그를 야단치거나 그에게 화풀이할 수 있다. 클레오는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족 구성원이기보다 고용인으로 느껴진다.
관계의 두번째 변화는 영화의 거의 막바지에 일어난다. 아이를 사산한 클레오는 말을 잃어버리고, 그런 클레오를 위로하기 위해 떠난 바다 여행에서 클레오가 소피의 아이들을 구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클레오가 아이들을 위해 거친 파도가 머리 끝까지 넘실대는 흑백의 바다로 성큼성큼 뛰어드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씬 중 하나다.
클레오와 아이들, 소피가 해변에서 하나의 작은 탑처럼 서로를 부둥켜 안았을 때, 영화는 클레오를 영웅으로 만드는 대신, 클레오가 사산한 아기에 대한 심정을 털어놓는 것을 보여준다.
- 저는 그 아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어요. 불쌍한 아기.
클레오가 아기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터뜨렸을 때, 소피가 클레오에게 하는 말은 아마도 가장 온전한 위로일 것이다.
- 클레오, 우리는 너를 사랑해.
클레오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으나 마주치고 떠안아야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소피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클레오의 잘못이 아님을 넘고, 이해를 넘어서,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고.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 삶에서, 아이를 잃거나 잃을 뻔하면서,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지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하면서, 부당한 폭력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음을 자각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 세계에서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서, 소피의 아이들 역시 처음으로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리고 아이를 잃은 뒤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던 클레오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고 조르는 모습이나,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 재난과 축제는 분절없이 중첩되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차라리 삶의 배경 같이 느껴지는 지진, 화재, 결혼식, 파티, 출산, 시위와 진압, 폭력, 죽음 등의 사건은 불쑥 찾아오며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 온갖 것들의 뒤섞임 속에서, 무능하고 폭력적인 정부와 혼란스러운 사회는 유색인종이자 하층 계급인 여성의 삶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하며 치명적이다.
그러나 날마다 장대를 휘두르며 무술을 연마하고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이들도 해내지 못하는 어려운 자세를 담담하게 해내는 클레오의 강인함과, 남편이 애지중지 몰아온 차고의 크기에 맞지 않는 커다란 차를 함부로 여기저기 들이받은 뒤 좀더 작고 알맞은 차를 사는 소피의 단호함은 삶의 재난과 축제를 배경삼아 쓰러지지 않고 진행된다.
소피가 아버지가 없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조금 달라졌을 뿐이며 우리는 앞으로 함께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듯이,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달라지며 내내 그럴 것이다. 삶은 예상치 못한 굴곡을 보내오므로. 그리고 클레오나 소피는 이를 특유의 꿋꿋함으로 거듭 반복할 것이다. 삶을 반복 수행하는 노동을 묵묵히 감내하는 자들만이 갖게 되는 아우라와 함께.
유튜브 <유자책방> : https://youtube.com/channel/UCyMRgPGveLUsN1EOA2pnk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