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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Jan 18. 2021

도망칠 줄 알아야 뿌리가 튼튼한 작물이 된다

[휴일의 기분] 1화. 영화,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한국 기업의 직장인이고, 일기를 씁니다

[직장인의 기분] 과 분리하여 [휴일의 기분] 을 쓰기로 했습니다

주로 책과 영화 리뷰를 쓰고, 보태어 일기도 쓸 거예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몸과 마음이 아파서 회사를 쉬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달갑지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병이 찾아온 탓이다.

월요일을 앞두고 찾아오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병.


왜 불안한지, 무엇이 불안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안아주어도 잘 사라지지 않고, 월요일 아침이 오는 걸 점점 더 두렵게 만든다. 매주,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영하의 날씨에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타일로 된 화장실로 들어가 온수가 나오지 않는 샤워기로 샤워를 해야만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죽지도 않을 거고, 아프지도 않을 거지만, 너무 너무 귀찮고 번거롭고 추운 하루가 시작될 걸 아는 사람.


그때 생각나는 영화는 2018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였다.

일본판 원작 <리틀 포레스트>와는 꽤나 다른 영화가 되었다고 들었는데(원작은 아직 보지 못했다),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사계절간 자급자족하며 먹고 또 먹는 농촌 판타지다.

먼저 이 영화가 판타지인 이유는, 다짜고짜 찾아간 농촌 고향집에서, 그것도 몇 년간 비어있던 집에서, 그와 같은 평화와 배부름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는 두 절친과, 좀 미운 소리는 하지만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는 고모를 포함해서.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현실성이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 불안을 어떻게든 씻어줄 수 있는 판타지 영화를 찾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본 날이 삼년 전, 입사 후 처음으로 쓴 휴가 중이었다는 것도 한 몫했다.


2018년 1월에 입사한 나는, 길고 긴 연수를 끝내고 부서에 배치되기 직전 짧은 휴가를 받았는데, 어쩐지 싱숭생숭하고 좋은 시절 다 끝난 것 같은 그 마음을 붙들고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경주로 혼자 떠났었다. 2박 3일간 햇볕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경주의 골목을 지나 한옥에서 먹고 지내며 아침마다 대릉원을, 밤마다 안압지를 산책했고, 황리단길의 떠오르는 맛집을 모조리 찾아가서 경주 맥주를 즐겼다.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 향했던 경주의 메가박스 기둥엔 상영시간표가 프린트되어 붙어있었고, 가장 적당한 시간에 <리틀 포레스트>가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보았던 영화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이 상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 뱉는 장면이나 저벅저벅 마을로 돌아와 자물쇠를 따고 마루에 배낭을 던져놓은 채 드러눕는 장면,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가 고함치는 상사의 눈 앞에서 돌아서 사무실을 등지고 걸어 나오는 장면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 모두 그들이 서울에서 버텨온 삶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리고 어딘가로 돌아가길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견디며 말라 비틀어져 버리는 대신에 등을 돌려 걸어나오길 결정하는 순간 말이다. 그렇게 신입도 안된 연수생 시절에 본 영화는 회사에서 일하는 삼 년 동안 늘 나에게, 사실은 도망갈 곳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주었다. 그게 다소 판타지라고 해도. 도망갈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계속 버틸 수도 있었다. 여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완전히 서울살이를 접고 '답을 찾아' 마을에 돌아온 재하와는 다르게, 자신이 그저 서울에서의 삶에 실패하고 이곳으로 도망쳤을 뿐 진짜 질문을 외면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혜원이, 나와 가까웠다. 그래서 혜원이 먹고 먹고 또 먹는 장면들, 서울의 편의점에서는 너무 배고팠던 영혼을 위해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가득 요리해서 먹으며 흘러가는 사계절은 보는 나에게까지 포만감을 줬다.

<리틀 포레스트>에는 부족하지만 무엇이 부족한지 답을 찾지 못한 혜원과, 신선한 작물을 키워내고 수확하는 농사, 그 작물에 온갖 정성과 기다림을 담아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 다시 그 요리를 맛있게 먹어치우는 혜원이 있다. 오직 키워내고 그 키운 것을 요리해 먹는 행위를 통해 차곡차곡 치유되는 혜원을 보는 것은 스크린을 통해 함께 영양분을 흡수하는 경험과도 같았다.


영화의 마지막엔 재하가 혜원의 방황을 양파의 '아주심기'에 비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양파는 두 번 손이 가는 작물인데, 처음 씨앗을 심고 멍석을 덮어 모종을 길러낸 후에 이걸 다른 땅에 '아주심기'하는 과정을 거치면 훨씬 튼튼하고 맛이 좋은 양파가 되기 때문이다. 혜원이 내내 자신을 시골 마을에서 키우고 말도 없이 떠나 버린 엄마를 원망했지만, 그 마을에 심겨지고 흙과 햇빛 속에 자란 혜원이 아주심기를 거쳐 진짜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고, 좋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속이 꽉차고 알이 굵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먼저 도망칠 줄 알아야 한다.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도망칠 곳이 필요하다. 좋은 땅을 알고 있어야 하고, 볼 줄 알아야 한다. 모른다면,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여행을 하는 것들도 방법이다. 물론 좋은 요리를 먹는 것도. 좋은 것들에 대한 경험에서 좋은 땅이 다져진다. 도망친 곳에서 답을 찾는 판타지가 도움이 되는 것은,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서다.


삼 년 만에 조금 도망쳐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면서, 아직, 아주 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따끈한 국물과 신선한 채소로 된 요리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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