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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Sep 13. 2023

흑과 백의 단순함으로 흐르는 불온과 평온

사카모토 류이치

6. 음악인 사카모토 류이치


그의 연주곡들은 대부분 작고 여린 소리로도 불온한 떨림을 낸다. 그리고 그 떨림은 불행을 기다리는 인간의 무력한 마음을 태우고 별안간 힘차게 달려간다. 때로는 부드러운 평온보다 불온한 떨림이 더 마음을 가라앉혀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의 음악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평온이기도 하다.


안정제나 수면제 대신, 늘 마음을 가라앉혀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으려 한다. 내부의 기류가 술렁이기 시작할 때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무기. 전에 썼듯이 그건 누군가의 성실한 브이로그이기도 했고, 작은 서점이기도 했다. 요즘 나에게 안식을 주는 것은 류이치 사카모토*다.


나는 음악에 있어 문외한이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도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아이들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라는 가창 시험은 끔찍했고, 음악 실기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한동안은 어딜 가도 배경처럼 깔리는 음악에 지쳐 모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하고 음악을 듣지 않는 삶을 살기도 했다. 누가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어보면, 저는 음악을 안 들어요 하고 답했다. 그럼에도 음악과의 좋은 기억들은 물론 가지고 있다.

처음 피아노 리사이틀에 갔던 날이 그중 하나다. 20대 후반의 나는 회사에서 호기심에 신청했다가 당첨된 연주회가 혹여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독일인가 오스트리아 출신 백발의 연주자가 사분음표처럼 또박또박 무대로 들어서던 순간부터 마음을 놓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연주를 하기에 앞서 어떤 군더더기도 붙이지 않았다. 피아노 앞에 도달해 바람이 흐르듯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는 어느새 건반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 정확하고 깨끗한 움직임. 일단 건반이 눌리기 시작하자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때 피아노란 아주 단순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가볍고 정교한 한 음 한 음과, 움직임과, 장면으로부터 무엇이 나올 수 있는지를 조금 엿보았다. 무엇도 더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아름다움. 누군가에겐 아주 다른 모습과 소리일 피아노는 그날 이후 나에게 단순함의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여름, 회사를 쉬는 날 회현의 piknic에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메인 전시를 보고 그 내용과 piknic 건물의 외관에 감탄하며 나왔을 때, 류이치 사카모토 추모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이름이나 대표곡의 멜로디 정도만을 알고 있던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그 무료 전시장에 발을 들였던 걸로 기억한다.

전시공간은 온통 검게 칠해져 거의 흑백의 대조만을 이루었다. 조그만 전시장은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고, 가장 안쪽의 스크린에서는 흑백 영상 속 생전의 류이치 사카모토가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연주하고 있었다. 흑과 백이 이루는 명료함 속에 분명하게 찍히는 그 곡은 내 마음에도 발자국을 남겼지만 익숙한 종류의 감동이라고 생각했다. 조명과 색과 음악이 줄 수 있는 예상 가능한 마음의 동요라고.

전시장을 빠져나와 일행을 기다리려는데, 출입구 벽면에 그의 일기가 쓰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지금 기억하고 여기에 옮겨 적을 만큼 특별한 말은 없었다.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이가 세상과, 말년에는 병마와 불화하고 화해하며 남긴 말들이었다. 그럼에도 전시장을 벗어나서도 자꾸만 그의 말들이 떠올랐다. 그곳의 소리와 색을 돌아보았다. 그날부터 마음이 소란해질 때, 류이치 사카모토를 듣는다.


그의 음악은 내 마음을 더없이 차분하게 해준다. 작은 일로도 쉽게 두리번거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그의 피아노 선율이 감싸준다. 그렇다고 그 음악이 마냥 차분하고 다정한 것은 아니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그렇지만, 그의 연주곡들은 대부분 작고 여린 소리로도 불온한 떨림을 낸다. 그리고 그 떨림은 불행을 기다리는 인간의 무력한 마음을 태우고 별안간 힘차게 달려간다. 때로는 부드러운 평온보다 불온한 떨림이 더 마음을 가라앉혀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의 음악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평온이기도 하다. 그의 피아노가 마치 또박또박 계단을 밟듯 음을 밟아나갈 때 나도 모르게 전부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는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말했던 이의 마음을 되밟아본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듣다가 이어서 그의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샀다. 그의 글쓰기는 음악 하기와 닮아있었다. 문장은 단순했고 생각은 명료했으나 뒤편엔 불온하고 흔들리는 마음이 있다. 그런 문장은 읽을수록 차분해진다. 나를 붙들어 주면서도 상상하게 한다. 책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아껴서 넘기는 중이다.

음치에 박치에 몸치에 듣는 귀도 없는 내게 피아노 연주곡이 가장 유효한 휴식처가 될 줄 어찌 알았을까. 가사 없는 선율이 나에게 말을 거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덕에 나는 이제 다시 음악을 듣는다.



*본문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식 표기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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