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존재성을 거부하는 영화:라라랜드

애매하게 화가 난다

by 김유자


라라랜드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보고 나서 두 번을 더 봤다.

마지막에 결론을 너무 현실적으로 내버려서

아쉬움이 남는 걸까?

아니면 화려한 영상미에 반한 걸까?

아니다. 둘 다 아니다.

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을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찝찝함만이 남았다.

왜 찝찝하고 무엇이 찝찝했을까

영화를 분해해 봤다.

​​

1. 정서적 스키마 형성 (Schema Priming)

시작은 마치 꿈속처럼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원색에 가까운 색감을 때려 넣는다.

과도한 색감, 풍부한 음악, 과감한 카메라 무빙,

등장인물은 지나치게 빛이 난다.

할 수 있는 판타지 요소를 전부 넣고 충만함을 준다.


“이건 판타지야, 꿈의 세계야,

네 꿈과 희망을 마음껏 부풀려도 돼“


라는 정서적 스키마를 관객 뇌에 세팅한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이건 희망, 꿈, 로맨스 영화구나”

라고 인식한다.

감정의 톤이 일관되게 높아지기 때문에

결말도 이 톤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쌓인다.

판타지 감정 스키마를 구축하는 것이다.

2. 기대 위반 효과(expectation violation effect)


그런데 결말에서 그 스키마를 부숴버린다

문제의 결말.

갑자기 삶의 현실, 선택의 양가성,

타이밍의 잔인함 같은

현실주의적 메시지를 들이민다.

판타지를 원하던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껴진다.



“아까까지 꿈꾸라고 해서 꿈꿨더니,

갑자기 ‘현실은 그런 거 없다’고

뺨 맞은 기분“



이는 감정적 기대 위반에 가깝다.

관객은 이미 전반부에서

내부 회로를 판타지 모드로 설정하고

그 방식으로 감정을 투자했다.

관객에게 “판타지 모드로 갈게요”라고 말하고

갑자기 바꿔버리는 것이다.

감정의 룰을 뒤늦게 바꾸는 방식이

관객에게 배신감을 준다.

심리학에서 기대치 위반 효과에 해당한다.

3. 이중 타겟 오류 (Dual Audience Targeting Failure)와 정서 불일치(Emotional Dissonance)

영화 보는 사람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면

첫 번째는, 영화에게 판타지를 기대하는 그룹

두 번째는, 영화에게 현실적인 것을 기대하는 그룹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판타지를 기대했던 사람에게

결말은,

즐겁게 만들어준 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배신감을 준다.

초기 판타지 스키마를 기반으로

‘판타지적 결말’을 예측하던 이 그룹은

결말이 예측과 충돌한 순간 예측 오류가 발생한다.

예측 안정성을 좋아하는 뇌는

예측과 어긋나는 상황에서 불쾌감, 혼란,

감정적 충격을 느낀다.

"결말이 현실적이니까

현실주의자를 타겟팅한 거 아닌가?"

글쎄,

영화에 현실적인 것을 기대한 그룹은

1. 애초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제목, 포스터, 트레일러만 보아도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

2. 진입하더라도 초중반부에서

몰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탈 가능성이 높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어쩔 수 없이 보더라도

몰입이 안 돼서 지루하고 시간이 잘 안 갔을 수 있다.

또 노래 불러?

또 춤춰? 언제까지?

아마 OTT로 봤다면 높은 확률로

끝까지 안 보고 이탈했을 것이다.

영화의 60% 이상을 구성하는

뮤지컬적인 연출이

이 그룹에겐 ‘거부감 자극 요소’다.

관객은 감정 톤이 자기 성향과 맞지 않으면

몰입이 아니라 긴장을 느낀다.

심리학적으로 정서 불일치 때문에

피로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주의자들은

아예 초반부에서 하차하기 쉽다.

이입이 안되기 때문에.

하지만 결말을 보고 나서는,

전자의 그룹보다는 만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비극적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정서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라라랜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정서 규칙을 섞어버렸다.

정서적 타켓팅이 명확하지 않은 것.

관객 두 그룹 모두에게

정서적 보상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정서적 타겟팅이 모호하다고 볼 수 있다.

4. 정서적 보상과 카타르시스 부재 & 의미 통합 실패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기능은

감동 (정서적 해소)

재미 (감각적 쾌락)

의미적 통합 (해석 가능성)

이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라라랜드는 결말에서 이걸 전부 배반한다.

1. 판타지적 흥미를 결말에서 무효시킨다.

전반부에서 흥미롭던 감정이

결말의 현실적인 메시지로 인해 의미를 잃어버린다.

앞서 보여줬던 판타지 요소가 전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흥미를 느끼던 회로 자체가 차단된다.

뇌의 보상 시스템은 완결을 선호한다.

미완성으로 남았을 때 긴장과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열린 결말 + 감정적 상실 + 역행된 감정톤으로 인해

찝찝함을 느끼고 뇌에 미완성으로 남는다.

2. 감정적 감동을 성장이나 카타르시스 없이 상실로 종결시킨다.

대부분의 비극영화조차

'아프지만 의미 있었다'는 결론으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라라랜드는

성장도 완결도 카타르시스도 아닌 상실을 준다.

'그냥 둘이 다른 길을 갔다'는 결말에서

감동 회로가 차단되고

공허함, 배신감, 상실감의 종류가 남는다.

이 부분이 내가 영화를 계속 봤던 이유인 것 같다.

찝찝함을 해소하고 미완성을 해결하고 싶어서

1.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의미 통합을 제공하지 않고

둘 다 제시하고, 둘 다 부정하는 짓을 저지른다.

2. 감정 곡선을 완결시키지 않고

상실만 던져놓고 회수하지 않는다.

3. 전반부의 정서 톤을 결말에서 무효화시켰다.

정서적 일관성 파괴에 해당

영화의 존재 이유

즉, 인간이 영화에 기대하는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다

의도적으로 배신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존재성을 거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명작도, 졸작도 아닌 존재적 실험에 가까운 것이다.





"너희가 원하는 판타지는 이렇게 부서져.

사랑과 꿈은 동시에 얻을 수 없는 거야.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여기서 드는 의문

5. 감독은 왜 모두에게 불쾌감을 주는 영화를 만들었지?

왜 꿈과 희망이 아니라

이딴 메세지를 주고 싶어 했지?

집에 우환 있나?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1. 개인적 우환

2. 철학적 집착


​가설의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일대기를 파봤다.

1. 자아의 형성과 꿈

데이미언 셔젤은 학창 시절에 재즈 드러머를 꿈꿨다.

2. 좌절된 꿈과 현실과 타협

프린스턴 고등학교에서

스튜디오 밴드 재즈 드러머로 지원했고,

매우 엄격한 스승에게 드럼을 배웠지만,

뛰어나지 않다는 혹평만 듣고 드러머는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엄격한 스승은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의

모티브가 된다. 한이 많이 쌓인 듯

결국 드러머에서 손을 뗀 뒤,

공부에 집중해서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간다.

3. 덮어두었던 자신의 꿈을 다시 열어주는 정서적 조력자 등장

하버드대학교에서 셔젤은 현재 자신의 페르소나인

저스틴 허위츠를 만나게 된다.

셔젤과 허위츠는 하버드 시절부터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던 동갑내기 룸메이트로,

영상을 전공한 셔젤은 드럼,

음악 전공생인 허위츠는 키보드를 잘 쳤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학 시절부터 둘은 단짝 친구가 됐다.

4. 꿈을 다시 좇는 셔젤과 쉽게 열리지 않는 현실

뮤지컬 영화에 빠지기 시작한 셔젤은

21살에 라라랜드의 각본을 구상한다.

당시 무명이었던 그의 뮤지컬 영화에 투자할

영화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렵게 투자를 받았지만,

금액은 100만 달러(약 11억 원)에 그쳤다.

5. 두 번째 좌절

어쩔 수 없이 라라랜드 제작을 미루고

2009년 뮤지컬 영화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벤치로 데뷔한다.

흥행은 하지 못했다.

6. 세 번째 좌절

영화 프로듀서인 재스민 맥그래이드와

2010년 결혼했다가

2014년 이혼한다.

7. 결실을 맺다

5년 후인 2014년에 영화 위플래쉬로 대박을 터뜨린다.

8. 오랜 염원

위플래쉬의 성공으로 그제야

자신이 만들고 싶어 했던 라라랜드를

2016년에 개봉시킨다.

이 작품이 셔젤을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만들어 주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관왕이라는 성취를 낼 정도로

엄청난 호평과 함께 흥행도 대박을 터트렸다.

9. 라라랜드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올리비아 해밀턴과 2017년 말 결혼한다.

데이미언 셔젤의 일대기를 훑어보면

라라랜드는 감독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축한 자신의 신념에 가깝다.

그러니까

1. 개인적 우환과

2. 철학적 집착

두 가지 가설이 모두 해당한다.

라라랜드를 개봉시키고 싶었던 건

자신의 꿈 그 자체였기 때문이고

또 개인적인 완결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감독이 실제로 개인적 불행에 잠겨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보면,

라라랜드의 결말은

지독하게 일관된 세계관의 결과로 보인다.

6. 라라랜드를 보고 애매하게 화가 나고 찝찝했던 이유

​결론적으로

감독은 라라랜드를 통해 자기 서사를 완결시켰고,

관객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떠안았다.

그 불균형에 대한 설명이나 보상은 없다

어쩌면 감독으로서는 조금은 이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왜 이 미완성을 내가 대신 떠안아야 하지?“



내가 라라랜드에 애매하게 화가 나고 찝찝했던 이유는

감정 노동의 전가(emotional labor transfer)에 대한 분노의 일종이었다.

그래도

라라랜드로 인해

감독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다 받았으니까

축하는 한다만

조금 더 관객을 배려할 수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개봉 당시에는 3번이나 봤던

영화를 다시는 찾지 않는 이유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찝찝한 이유

감독 입장에서 과연

좋은 관객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독은 관객이

어떤 장기적인 감상을 갖게 될지

다음에도 이 감독의 영화를 찾게 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걸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비주얼의 미학은 비주얼 디렉터의 할 일이고

음악의 미학은 음악감독이 할 일이다.

영화감독의 최우선 할 일은

각본을 다듬는 것이다.

이 영화가 시각적, 청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본만 두고 본다면

영화의 존재성을 파괴하는

영화의 존재 이유를 거부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잘못 만든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잘못 만든 영화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상을 수여한 이유

영화 관련 종사자들

‘영화쟁이들‘은 언제나,

어떻게 감동과 재미를 주면서

흥행까지 시킬 수 있는지에

몰두해 있는데,

셔젤은

재미와 감동을 둘 다 파괴시켜 버렸는데?

흥행을 시켰다?

이것이 영화쟁이들한테

카타르시스와 해방을 준 것이 아닐까.

나는(영화쟁이들) 평생 그 안에서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몰두해 있는데,

다른 누군가가(셔젤)

그 필요조건을 모두 파괴시켜 버리면서도

원하는 반응을(흥행) 이끌어낸 것이

그들에게(영화 종사자들)

큰 충격과 해방을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말하는 “잘 만든” 영화라서

상을 준 것이 아니라,​


존재적 실험을 성공시킨 것에 대한 훈장이자, 그들의(할리우드 영화종사자들)의 독립해방군(셔젤)에 대한 ’인정‘ 정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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