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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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어서 꾸역꾸역 삶을 살아냈다.
실내디자인과를 어찌어찌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다.
도시경관계획, 아파트 내장공사, 조명설계.
차례대로 5인 미만, 2-30인 기업, 100인 이상 기업이었다. 3곳을 지내보며 알게 된 것은, 나는 사람이 적은 환경을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5인 미만 사무실에는 그 어떤 절대적인 질서도, 규칙도 없다. 누군가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그날의 질서와 규칙이 정해졌다. 감시자들이 없으니 규칙과 원칙이 무의미했다.
불규칙하고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그 혼란의 중심에 나의 사수가 있었다.
처음으로 그 사수와 단둘이 외근을 나가야 하는 날짜가 정해졌다.
지금 5명 있는 사무실에서도 이렇게 지랄하는데 단둘이 있으면 얼마나 더 지랄할까.
외근 가기 하루 전날에 사장님한테 더 이상 출근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 이유도 설명했다.
대학 교수를 겸하고 있는 여자 사장님은 지성을 겸비하여서인지 내 말을 이해한 듯싶었다. 그러나 내일은 나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예? 안 돼요.
그렇게 짐을 싸서 나갔다. 사무실 직원들에게서 차례로 전화가 왔지만 받을 수 없었다. 전화를 받아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책임해 보인다고?
그들의 무자비한 비난과 언행들은 책임감이 있었나?
2-30인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공무를 지원해서 들어왔는데 현장으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하이바와 각반을 들고 이문동 건설 현장으로 매일 새벽 5시에 주 6일을 출근했다.
새벽 5시에 지하철을 타면 온통 노가다하는 사람뿐이다. 그들과 같은 곳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동질감이 들었다.
땡볕에 타버려 피부가 까매지고 땀 냄새가 나는 아저씨들과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그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5분 만에 마셔버린 뒤에 혈당 스파이크가 와서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자고, 퇴근을 하면 씻을 힘도 없어 술로 고된 피로를 외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나 슬픔을 잘 마주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이 되도록 길러지기도 했다. 마치 그런 행위는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왜인지 짠해서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에게 친한 척도 해보았다. 친해지면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친해지려 하면 그들은 은근히 꾀를 부리며 일을 안 하려고 했다. 담배를 피우고 온다고 하고 2-30분을 안 온다던가, 화장실을 간다고 한다거나, 어설프고 헤매는 나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하겠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공정을 늦추고 일당을 더 받아내려는 꼼수를 부렸다.
그걸 알게 된 후로 나는 현장에서 절대 조금도 웃지 않았다. 희미한 미소조차도 짓지 않았다.
우리의 간이 사무실은 공구리를 마친 현장 건물의 지하 3층에 있었다. 온통 분진과 아저씨와 낯설고 무서운 중국말과 담배 냄새와 계단마다 설치된 간이 화장실의 찌린내가 가득했다.
사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애였는데, 나보다 늦게 출근해서는 그 민망함 때문에 되려 이유 없이 화내고 일을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 애가 지각한 게 민망하지 않게 내가 달래줘야 했던 걸까?
팀장님이자 현장 소장인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 늦고, 매일 자리에 없었다.
소장님이 없는 날은 사수가 의자에 기대서 낮잠을 자고 있고, 소장님이 출근한 날은 소장님이 의자 뒤로 기대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두개골을 때리는 연장 소리가 들리면 사수라는 사람은, 재빨리 자기 차로 가서 낮잠을 자는 민첩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자재의 안전 서류와 또 물량산출과 업체들의 연락처들을 찾아서,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지하에서, 신호가 가는 스팟을 찾아, 거기에 서서 하루 종일 전화를 해댔다.
분진 없는, 공기청정기와 무풍에어컨이 돌아가는, 지상의 사무실에 계신 대단하시고 고결하시고 콧대 높으신 푸른 대기업 프로님에게 서류를 까이고, 까이고, 또 반려당하고 또 반려당하며 고군분투할 동안 그들은 연장 소리 같은 코골이를 내며 단잠을 잤다.
소장님은 내가 여자라서 현장에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며 나를 잘라버렸다. 웃지 않고, 굳은 얼굴로 일을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내가 웃지 않기로 결정한 건, 정해진 공정을 지키고 정해진 예산대로 일을 끝내기 위함이었는데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업무에서 떠나야 했다.
주 6일을 새벽 5시에 출근해서 17시까지 현장에서 업무를 보고, 사무실로 이동해서 22시까지 야근을 시켜놓고 추가근무 수당도 안 주는 회사를 떠나는데 뭐가 아쉽겠나. 아쉬울 게 하나도 없었다.
그쪽에서 먼저 잘라버려서 억울하긴 했다.
사실 이전 회사를 그만둔 내가 무책임하게 느껴져서, 아닌 걸 알면서도 오기로 버텼던 거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인 이상 기업은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 상식선의 행동을 한다. 사람이 상식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배울 점도 많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이 마주치는 시간이었다. 나의 부족한 점을 메꾸고 더 공부해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어딜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두가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선을 지킬 줄 알았다. 그 선이 굉장히 상식적이고 납득 가능해서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스펙을 보는 이유는, 이 최소한의 상식 안에서만 가능한, 쾌적한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임을 알았다. 여기보다 더 큰 대기업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8년 동안 먹던 정신과 약을 혼자 단약 했다.
약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8년 동안 약의 효능이 있었는가?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의 상태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건 나 스스로에 대한 메타 인지 능력과 깨달음을 얻고 삶을 버텨내면서 나 스스로 익히고 배운 것들이지. 약의 효능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은 확실히 즉각적으로 나의 불안을 잠재웠지만. 불안만 재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과 인지능력까지 재우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판단 능력을 흐리게 하고 아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또, 8년이나 나를 진찰하는 이 의사의 태도는 어떠한가. 윽박지르고 비난하고 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진료실에 가면 나의 발언권은 거의 없었고, 잔소리, 비난에 가까운 말들만 귀가 아프게 듣다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이런 말을 왜 듣고 앉아있지?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더 이상 의사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약을 안 먹기 시작한 첫 두 달은 고통스러웠다. 역시나 이석증과 어지럼증과 구토가 올라왔고 특히 어지러움과 두통이 심했다.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전략이 필요했다.
3일에 한번, 5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 번.
원래는 하루에 세 번 복용하는 약의 투약 간격을 늘렸다. 첫 한 달은 그렇게 투약 기간을 조정했다.
두 번째 달부터는 약을 먹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웠다. 평소에는 그냥 참고, 업무에 집중을 해야 하거나 공부를 할 때만 타이레놀이나 진통제를 먹었다.
약을 끊고 두 번째 달 즈음, 약 때문에 아둔했던 나의 판단 능력이 다시 예민하고 명민해진 덕분일까.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지고 1주 정도는 허전했다. 있다 없으니까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집의 작은 가구를 버려도 허전한 느낌이 드는데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관성 같은 것이다.
사실 별로 마음이 없었던 게 맞다. 그 사람도 별로 나를 안 좋아했다. 나는 데이트를 해도 하루 종일 한 번도 안 웃는 날이 많았다. 나는 원래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대화도 안 통하고 가치관도 전혀 다르고 취미와 성격도 정반대에, 타인은 배려하면서, 나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없고, 이성적 끌림도 없고 스킨십도 전무한 사람을 왜 오래 만났을까. 나는 그냥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 사람은 나를 왜 만났을까. 내가 강하게 의심했던 대로 정말 게이였을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다 같이 먹을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갔는데 내가 친구에게 “나 이거 사도 돼?”라고 물었다. 친구는 황당해하며, "네가 먹고 싶은 거 고르면 되지 그걸 왜 나한테 허락을 받아?”라고 했다. 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맞네.. 그걸 왜 물어본 거지 나는?
그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가스라이팅 해왔다.
그 사람에게서 나의 감정과 모든 생각을 부정당하고 살았더니 스스로 먹을 과자 하나조차 고르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너무 충격을 받았고, 그 사람에게서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또 어떤 갈등으로 다투게 되었을 때 마침내 헤어졌다.
헤어지니까 숨이 트였다. 살 것 같았다. 나의 존재와 감정과 생각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말들을 안 들으니까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사람들이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밝은 얼굴을 되찾았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아침에도 잘 일어나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 이제야 내가 나를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회복되었다는 증거였다. 8년의 약물과 토 나오고 어지러운 부작용, 나를 갉아먹던 관계까지 모두 내 힘으로 끊어냈다. 나의 존재를 억누르던 것들을 스스로 이겨냈다. 오래 기다리던 순수한 성취감과 승리감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단약 3달째부터는 신체 증상이 없어졌다. 약을 먹지 않고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이석증도 어지러움증도, 구토감도 없었다. 불안이나 과호흡도 없었다.
퇴근 후와 주말마다 학원을 갔다. 퇴근 후에 미친 듯이 졸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울고 수업을 들었다.
실내디자인 직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했다.
단약한 지 9개월이 지났다.
단약한 처음의 두 달을 제외하고는, 두통이나 이석증, 어지러움 등의 증상도 없었고, 과호흡이나 신체증상도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불안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이다. 예전에는 불안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했었다.
나는 절대 불안을 느껴서는 안 되고 불안은 비정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은 사실, 센서 같은 것이었다. 위험을 감지하거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알람이나 센서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불안이 두렵지 않았다.
이정표, 나의 감각, 보안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니까 살면서 꼭 필요한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탈을 흔들만한 이슈가 몇 개 있었지만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 감정과 불안을 다루는 방법.
상황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고, 사건과 감정을 분리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작업을 일기를 쓰면서 매일 해오고 있었다.
메타인지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내가 나의 감정과 불안을 이해하는데 유용했다.
감정과 불안의 이유와 발생 기원을 알면, 더 이상 그것이 나를 흔들거나 지배하지 않았다.
나의 감정과 불안과 그 모든 것들은 설명 가능한 것이었다. 설명이 가능하고 이해가 되니까 불안하지 않았다.
감정들은 어떤 사건들의 결과일 뿐이었다.
불안과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거나,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이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학과 철학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 읽던 심리학 책보다는 더 어렵지만 원서에 가까운 책을 읽었다. 그게 조금 더 내가 갈망하는 진리에 가까웠다.
더 많이 알고 싶었다.
더 많이 알면, 더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더 많은 것들이 설명 가능했고, 설명 가능한 것들은 통제가 가능했다.
나는 깨달았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약들이 “파란 약” 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파란 약”먹기를 멈춘 것 자체가 나에게 “빨간약”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