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go-round

02 회피

by 김유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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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됐고 대책은 여전히 없었다.

사람들 말대로 알바도 해보고, 혼자 여행도 가봤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나마 재능이 있었던 디자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9월이었다.

늦었지만 일단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알바를 해오긴 했지만 입시 미술 전문 학원을 다닐 돈은 없었다. 성인이 됐기에 부모님 손을 빌리기도 싫었다. 그냥 집 앞에 초딩들 다니는 미술 학원을 갔다.

늦은 시기인 것도 알고, 입시 전문이 아니란 것도 알지만 갈 곳이 없다, 떨어져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받아달라고 읍소하였다.

원장님은 난감해하다가 어렵게 받아주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술 학원에서 살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실기 시험을 봤고 서울의 한 전문대에 합격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나에겐 대단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실패만을 겪던 나에게 첫 성공의 경험이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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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갔다. 전문대니까 수업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아니었다. 얘들은 다 입시 미술을 해서 나보다 그림도 잘 그리고, 미술 이론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구조, 형태, 창작, 디자인적 사고와 발상 이론, 나는 처음 보는 것들뿐인데 얘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펜을 들고 있었다.

막막해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휴학을 했다. 문예 창작과 입시 실패 후, 두 번째 회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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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을 하고서 도피성 알바를 했다. 일단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했다.

카페 알바를 하다가, 아무 의미 없이 카페에서 일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재미있는 데서 일해야겠다 싶어서 놀이공원, 영화관, 전망대, 백화점, 신발 매장 등등 일부러 사람 많은 곳을 지원했다. 사람들의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얼굴이 금방 빨개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를 받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미움도 받고, 오해도 받고, 괴롭힘도 당하고 이리저리 치이는 일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못되고 나쁜 게 아니라, 이것이 진정한 날 것의 사회였다.



어느 날은 과호흡이 왔다. 숨이 안 쉬어졌다. 의사는 내가 불안장애와 사회공포증이 있다고 말했다.



약을 먹으면 중력이 8배는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아침에 잠에서 깨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무거운 추가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 침대에 앉아도 멍하고 몸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낮에도, 밤에도 나는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내가 생각을 하지 못하게 계속 재우는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모든 약속 시간에 지각했다.

이것에 대해 누구한테라도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무한테도 설명할 수 없었다.

사실대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약을 이겨내야 했다. 중력을 이겨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지각하고 싶지 않았다. 남에게 실망을 주기도 싫고 안 좋은 소리 듣기도 싫었다. 하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이 짓을 반복하고 있는가.



어느 날은 너무 억울해서 약을 일부러 먹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이석증이 올라왔다. 어지럽고 구토가 난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달팽이관이 돌아간 것처럼 어지럽다.

두통과 이석증과 어지럼증이 심해서 오히려 불안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약이 무서워졌다.

나는 언제 이 약을 그만 먹을 수 있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갔다.

세상보다 한 발자국도 아니고 열 발자국 정도는 뒤에서 느리게 기어가는 기분이었다. 자기 효능감이 바닥이었다. 이런 기분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죽지 않을 거라면 살아야 했기에, 도망도 쳐보고, 맞서기도 해보고, 매일 혼자 울면서 버텼다.


정말로, 진실로 말하건대 이십 대 내내 나는 매일 울었고 매일 일기를 썼다. 울지 않은 날을 손으로 꼽을 정도로 나는 이십 대를 눈물과 눈물 젖은 일기로 버텨내었다.


신기하게도 버텼더니 조금씩 내가 변해갔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처럼 다시 내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달라진 점은, 힘든 상황에도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내 의견을 말하면서도 사회에 조화롭게 물들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갔다.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들의 경계선을 조율해갔다.




쾌활하고, 밝고, 회복이 빠르고, 하고 싶은 말을 잘하는 원래 성격으로 살면서도 사회에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갔다.




일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뿌듯한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매일 즐겁진 않았다. 힘든 날도 있었는데, 나는 힘들고 지치는데 이 사람들의 소중하고 행복한 날들을 망치면 안 되니까 힘든 걸 참아야 했다. 내가 힘든 걸 무시하고 이들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날을 만들어줘야 했다. 그게 나의 임무였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자꾸 의문을 제기했다. 불행한 날들이 쌓여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