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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9. 2022

취향이 깃든 공간, 삶

도쿄의 헌 책방 거리와 어느 재즈바

정말 오랜만에 일본 여행을 하고 막 돌아왔다. 4개월간의 발리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여행을 떠났고, 늘 그렇듯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내게 뜻밖의 깨달음을 던져준다.


도쿄 여행 마지막 날, 진보초라는 헌 책방이 많은 동네에 갔다. 현지 친구는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그곳을 알아내서 가는 나를 신기해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옛 것에 눈길이 가고 낡은 흔적들을 좋아하게 되는 내게 이 동네는 너무 너무 궁금한 곳이었다. 우연히 전날 블로그를 통해 이 장소를 알게 된 후에 무작정 다음날 그곳으로 향했다. 진보초역에 내리자마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바로 수많은 옛날 책들이 진열된 거리가 나타났다. 대개 일본어였기에 어떤 내용의 책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그곳의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진열되어있는 책을 한참 동안 둘러보셨다. 그러곤 다시 가던 길을 가시며 다른 책방을 기웃거리셨다. 오래된 책방이 많은 동네답게 이곳을 찾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한참 거리를 걷다  책방에 들어가봤다. 잡지를 하나 골라 구경하고 있자니  나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들어와서는 책방 주인이랑 얘기를 하며 어떤 책을 찾았다. 오래된 책방을 찾는 젊은이들도 꽤나 많이 있었다. 오래된 책방을 오래도록 운영하고 싶은 주인의 마음과 그곳을 계속해서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같아 괜스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특정 세대만은 아니라는 것도.


책방 구경을 하고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재즈바가 있길래 들어가봤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내부는 꽤나 모던하고 일본답게 깔끔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수많은 LP판들이 채우고 있었는데 주인분들의 오래된 꾸준한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취향이 맞는 단골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왔고, 혼자서 각자 음악을 맘껏 듣고 이 공간을 충분히 즐기다 가는 듯했다. 나도 차를 마시며 주인분들의 섬세한 감성이 짙게 묻어있는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주인 할아버지와 손님과의 대화를 맘껏 엿들으며 이 순간, 이 공간을 맘껏 만끽했다.


여러 취향들이 오래도록 짙게 남아있는 이 동네를 혼자서 여유롭게 즐겼던 이 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마 오래된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나지만 그 취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취향이 담긴 그들의 세계를 꾸준하고 멋지게 만들어온 사람들이 인상 깊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내 취향을 맘껏 탐구하고 가득 즐기며 살고 싶다. 내 취향이 깃든 나의 고유한 삶을 오래도록 지키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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