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언을 들을 때 양가감정에 휩싸여 감정을 소화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내가 원해서 들은 조언임에도 그렇다. 조언을 들을 때 각자 저마다의 기대감은 조금씩 있다. 어떤 사람은 정답을 바라고, 어떤 사람은 좋은 말을 듣기를 바란다. 나는 좋은 이야기 좀 듣지 않으려나 기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조언은 기대하는 방향으로만 오지 않기 때문에 조언이다.
조언을 듣는 게 마냥 편하기만 한 일이 아닌 것은 조언을 하는 순간, 조언을 듣는 사람과 조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이 분배되면서 미묘하게 위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위계를 의식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으면 조언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되고, 그 미묘한 위계를 과하게 의식하면 조언 듣는 사람은 자존심이 상해버린다. 조언은 내용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계도 건드린다.
조언을 들을 때 내가 외면했던 순간, 혹시 지나쳐서 보지 못 했던 순간들을 예상치 못 하게 마주하면서도 마음이 무너지면 안 된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내가 원했을지라도 내가 보지 못 했던 뒤통수를 마주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맞는 말인지 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인지부터 따지게 된다.
그럼에도 조언을 들으면 해방감을 느낀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무너지면서 그 틈 사이로 새로운 시선이 들어올 때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이 있다. 꽉 쥐고 있던 생각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머리가 맑아지기도 한다. 또 새로운 데이터가 쌓이면서 가야할 길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언을 구하는 것이겠지. 불편해질 수 있는데도 다시 그 자리를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