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형

by 이유진

무아를 체득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딜레마가 있다. 무아에 대해서 사람마다 강조하는 바는 제각각이겠지만 '고정된 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흘러간다'에는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고정된 나'라는 것은 개념과 언어로 존재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경험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선언하는 과정이다. 근데 이 과정에서 고정된 나란 중심이 만들어진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파고들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나'를 더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나를 설명하는 글이 길어지고, 페이지가 한 장씩 쌓일 수록 나도 글과 하나가 된다. 마치 종이인형이 되는 것 같다. 원래는 고정된 형체를 지니지 않았는데 경계가 뚜렷한 물체가 된 것이다. 종이인형이 되어갈 때마다 삶은 점점 무거워진다.


언어로는 어떤 것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데 언어로 설명하는 순간 언어로 설명하는 된 딱 그것으로 굳어버린다. 무아나 깨달음조차도 그렇게 된다는 것을 느낄 땐 참 막막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상태에서 일단 모든 판단을 유보해놓고 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파고들고 분석한다. 다시 종이인형이 될까 두렵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작은 핑계거리를 준다. 이건 수행이라고. 일부러 언어를 사용하면서 언어에 붙잡히지 않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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