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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제이 Mar 17. 2019

바다소와 수영하기

그리스, 2019년 3월 17일

책을 많이 읽는 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북이다. 이북리더기가 있으면 무거운 책들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모국어로 된 글을 읽기도 편하다. 일과 연락에 필요한 노트북과 휴대폰을 제외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전자기기이기도 하다. 이북 겉 표지에는 제법 큰 패치가 붙어있다. ‘I SWAM WITH MANATEES’. 여기에는 프리다이버가 바다소와 함께 수영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가 네 마리의 바다소와 수영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서 구입했다.



플로리다의 겨울이 끝날 무렵 바다소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보다 조금 더 따뜻한 해안가를 찾아 온다. 이때는 어미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된 무렵이다. 이곳에서 어미와 아이는 함께 바다에 동동 떠다니며 해초를 찾아 먹는다. 바다소는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덩어리 생명체이다. 몸집은 인간만큼 크거나 인간보다 크다. 매우 온순하고 겁이 많다. 동글동글하고 보드라운 피부를 가졌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이 바다소들과 함께 수영했다. 그렇다고 패치에 그려진 프리다이버와 같은 차림새는 아니었다. 사시사철 더울 것만 같은 플로리다도 겨울은 있다. 우리의 겨울처럼 눈이 오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플로리다와 비교하면 제법 썰렁한 바람이 불고, 햇볕은 어딘가 기울어져 있다.무엇보다 바닷속에 들어가면 오들오들 떨릴 만큼 춥다. 나는 스킨스쿠버 복장을 입고 물안경과 호흡을 도와주는 마스크를 쓰고 바닷속에 들어갔다.


바다에 들어간다고 자동으로 바다소가 보이지는 않는다. 바닷속에 들어가기 전 모터 배를 타고 바다소를 찾아 헤매야 한다. 내가 찾아간 시기는 아직 이르기 때문에 바다소가 많지 않았던 때였다. 같은 배를 타고 있던 모두가 목을 빼고 바다소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는 보이지도 않던 바다소가 강사와 선장 눈에는 보였다고 한다. 첫 정박지를 찾았다.


처음 바다에 들어가고 느낀 것은 바닥이 생각보다 폭신하다는 점이었다. 우리를 이끌어주던 바다소 전문가이자 스킨스쿠버 강사는 자꾸 첨벙대면 시야가 흐려지므로 권하지 않는다면서, 푹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다소의 똥 때문이라고 했다. 바닷속에 똥을 마음껏 쌀 수 있다니. 인간으로서는 5세 이후로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바다소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대신 피부의 촉각이 매우 뛰어나다. 물체를 감지하는 방식은 이 촉감을 이용한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물장구를 많이 치면 놀라서 스트레스를 받고 도망간다. 나는 똥을 헤쳐놓지 않으면서 바다소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수면 바깥으로 발을 빼고 헤엄친다.


이런 포즈로 헤엄치는 것은 쉽지 않다. 한참 허우적거리는데 누군가가 어! 하는 소리를 낸다. 이어서 여기 저기서 감탄사를 뱉더니 다들 잠수해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영문을 몰라 계속 허우적거리던 내 등 뒤로 무언가 묵직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툭 치고 간다. 바다소는 내 뒤에 있었다.



바다소는 실로 거-대-했-다. 강사는 수 차례 ‘바다소는 촉각이 예민하니 만지지 말라’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보니 만지기는커녕 가까이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경이로웠다. 거대하고, 눈이 보이지 않지만 촉각이 예민하고, 바다의 풀을 먹고 그곳에 똥을 싸는 보드라운 생명체. 바다소는 나를 밀치고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조금 멀리 떨어져 바다소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소는 적당한 풀을 찾아 머리를 박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바다소의 등에는 이끼가 퍼져 있었고,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 바다소가 많이 몰리는 시즌에 보트를 인정사정 없이 모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배의 모터 때문에 바다소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 배 외의 다른 팀들도 같은 바다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바다소가 겁을 먹고 달아난다. 강사는 바다소를 좇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하므로 다른 바다소를 찾자고 했다. 그런데 다른 배의 사람들이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바다소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큰 바다소가 향하던 곳에는 새끼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바다소가 두 마리가 된 것을 환호하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들을 좇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뭇가지 같은 걸로 이 사람들을 건져서 저쪽 들판에 내려놓고 싶었다.


다시 보트를 타고 한참을 떠돌았다. 강사와 선장이 또 다른 바다소들을 찾았다. 바다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첫 번째 바다소보다 덩치가 작은 어미와 새끼다. 이번에도 다른 커다란 배가 옆에 서고 많은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의 발이 물 밖으로 나와있었다. 계속 바다소를 보고 있었는데도 때때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기사, 겨우 허우적거리는 내가 바닷속에 사는 이들을 능가할 리가 없었다.



바다소는 끊임없이 먹고, 먹고, 또 먹는다. 어미는 아이가 풀을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다른 장소로 유도하기도 한다. 아이는 그런 어미의 인도를 벗어나 조금 더 넓고 깊은 곳에서 헤엄친다. 그러나 그 시간은 5분을 채 넘지 않는다. 가끔 이들이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가 있다. 강사는 겁먹거나 이들에게서 떨어지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고, 이들이 부딪히면 부딪히는 대로 두라고 했다. 이들은 촉각이 예민하니 그 곳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다가오는 것이다. 알고 있어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을 바닷속에서 보냈다. 보트를 타고 다시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 추운 몸을 핫초코로 녹이고, 강사가 찍어준 사진과 동영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사진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엄치는 나, 바다소를 보는 나, 보트에 앉은 나…… 사진 속에는 바다소밖에 없었다. 내가 나온 사진이라고는 기껏해야 두 장 정도였다. 함께 보트를 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강사에게 왜 바다소 사진 뿐이냐고, 이럴 거면 인터넷에서 사진을 봐도 상관 없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강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바다소가 있지만 당신이 본 건 이 바다소들이 아니냐고. 당신이 만난 바다소를 기억하려면 사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얼마 전 내가 많은 정을 주고 또 아프게 이별했던 한 사람이 한국을 떠나 모국으로 돌아갔다. 아마 우리의 인생이 다시 겹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만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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