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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제이 Feb 27. 2019

털요정(fur-fairy)들의 도시

그리스, 2019년 2월 17일

신림동 고시원에 살던 때, 침대 발치에 난 작은 창문 밖으로 고양이들의 발정기 울음소리가 그렇게도 많이 들렸다. 하루 종일 책을 뒤적이다가 밤이 되어 침대를 비집고 누우면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와 싸움보다 더 긴박한 교미 소리 같은 것들이 그 작은 창문 틈새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곤 했다. 복잡한 형법 이론과 각종 개인사로 마음이 여유롭지 않아 겨우 남은 수면 시간에도 '만약'의 상황을 가정하며 불안하게 지냈던 때, 참 이상하게도 그 고양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던 눅눅한 이른 봄에는 비교적 편안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애완동물을 길러보지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지도 않아 고양이는 고사하고 강아지조차 만져본 적 없던 내가 시끄러운 고양이 비명을 들으며 잠을 잘 수 있다니, 그것도 어느 때보다 잘 잘 수 있다니, 때때로 생각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웠지만, 그 고양이들이 내는 소리는 나에게 있어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보드라운 새끼 고양이들이 만들어지는 억척스러운 과정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은 말하자면 '고양이 기르는 법'과 같은 책을 첫 장부터 조심스레 넘겨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라이프 스타일을 살기로 선택한 후 결정한 첫 목적지는 코팡안Koh Phangan이었다. 신혼부부의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코사무이에서 배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이 섬은 풀문 파티니 뭐니 해서 광란의 도시일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히피들이 많이 살고 몇 군데 아주 유명한 요가원과 무에타이 짐이 있어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들, 그도 아니면 바닷가에서 이어폰을 끼고 춤을 추는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동네이다. 우리가 처음 묵었던 집의 주인은 코펜하겐과 코팡안을 오가며 요가 선생님으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코팡안의 건기이자 코펜하겐의 겨울은 코팡안에서, 코팡안의 우기이자 코펜하겐의 여름에는 코펜하겐에서 살고 있었다. 집세는 약 400불이 조금 안 되는 정도로 매우 저렴했고 전기세는 따로 내야 했지만 거의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고지서에 찍힌 금액은 매번 실소가 나올 만큼 적었다. 집 옆으로 울타리나 칸막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옆 집과의 거리는 그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었고 덕분에 프라이버시 보장도 잘 되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집이 나오고, 계단 밑의 공간은 주차 공간으로 쓸 수 있었으며 바닥과 집 사이 공간은 비교적 키가 큰 B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설 수 있을 정도라 우기에도 웬만한 벌레 같은 것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아니라 이 집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미누Minou로 인도어/아웃도어 고양이였다. 미누는 하루 종일 바깥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 6시 쯤, 밥때이자 잘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미누는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이 남자 친구는 노란색 태비를 가진 녀석으로 가끔 배짱 좋게 집 안까지 들어와 미누 밥을 먹기도 했다. 미누가 언제나 남자 친구랑만 노는 것은 아니라, 설거지를 하다가 밖을 보면 마당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서 정글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고, 동네 물소와 놀다가 물소 똥을 밟고 들어와 며칠 동안 똥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때때로 우리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디선가 우다다 뛰어와 덤불 사이로 질주하여 우리 오토바이 앞으로 착지한 다음 배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 밥때를 조금 넘겨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집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긴박한 야옹 소리를 내어 우리로 하여금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잠을 잘 때에는 꼭 침대에서 잤고(인간인가) 내가 그 옆에 누우면 내 가슴팍을 파고들었으며 덕분에 나는 거의 울면서 잘 때가 많았다(너무 좋아서). 세상에서 가장 얌전하게 목욕을 했고, 밖에서 놀고 오는 덕분에 귀에 잔뜩 틱이 붙어 있었지만 내가 족집게를 들고 그 틱들을 하나하나 잡아주면 시원한지 고대로 누워있다 잠이 들곤 했다. 나는 내가 동물을 그렇게 많이 사랑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했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우리와 침대에서 같이 자던 미누가 주섬주섬 짐을 들고 새벽같이 나오는 우리 뒤를 따라 나왔다. 트럭 택시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하던 우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 초록색 두 개의 빛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양이와의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그리스에 고양이가 엄청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만큼 밥도 주며, 가끔 박스 안에 이불을 넣어 이부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고양이들은 중성화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의 사랑에 익숙한지 가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때때로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기도 한다.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포로 로마노 같은 로마 유적지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다. 그리스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포로로마노와 같은 유적지가 보이는데 그 벽돌 수만큼 고양이도 많다. 처음에는 매번 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고, 2주가 다 돼가는 지금은 고양이가 없는 길을 걸을 때 시무룩하다. 작은 고양이 밥 포켓 같은 걸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고양이들이 많은 곳에 가면 조금씩 밥을 줄 까도 생각했지만 길가에서 노점을 하시는 분들이 밥을 무척 잘 주고 계셨다. 그래서 츄르를 구할 수 있다면 츄르를 주머니에 한두 개씩 넣고 다닐 생각이다.



하노이에서 보낸 3개월 이후로 지난 1년 간 아파트 전체를 빌려 지낸 적이 없었다. 때때로 하우스시팅을 하며 방콕, 시카고, 뉴욕 같은 곳에서 둘만 지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건 남의 집/동물을 돌봐준다는 느낌이 더 컸기 때문에 우리집 같은 느낌은 없었는데, 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한 그리스에 오면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아파트 전체를 빌렸다. 로마에서의 한을 풀고자 부엌을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처음 도착해 장을 보면서 이상하게 마트에 야채가 너무 모자라서 괴이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거의 매일 동네 장이 열리고 농부 아저씨들이 손수 기른 야채와 과일을 잔뜩 판다. 20유로 지폐를 들고 달랑달랑 시장에 가면 에코백 세 개와 배낭 한 개에 가득 야채와 과일을 들고 올 수 있다. 담배를 끊은 후 수시로 흡연 욕구에 시달리는 나에게 물담배는 좋은 친구인데, 로마에서는 14유로였으나 이곳에서는 단돈 3.5유로이고(아직도 믿을 수 없다) 입에 넣으면 사라져 버리는 양고기 케밥이 들어간 수블라키는 2유로이다. 엄청나게 좋은 요가 스튜디오도 찾았다. K. Pattabhi Jois 아래서 Level 1 인증을 받은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마이솔 스튜디오인데, 정말 좋은 선생님들이 많으시고 공간 자체도 너무 예쁘다. 한 달 단돈 70유로. 이 모든 것들을 첫 주에 겪고 나서 우리는 한 달로 예정했던 그리스 일정을 두 달로 늘렸다. 처음에는 유럽! 다 돌아다니자!라는 마인드로 2주일에 두 번 비행 일정도 불사했으나... 그리스 두 달, 그리고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는 세 달 있을 예정이다. 한 달 단위로 움직이는 건 그다음 일정 짜는 것부터 비행기나 숙소를 예매하는 것, 비행기를 타는 물리적 과정 같은 것들이 너무 빡빡하게 짜여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산다기보다 관광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원래의 우리 리듬대로 삼 개월에 한 번, 빠르면 두 달에 한 번이 적절하다는 데 다시 한번 의견을 모았다.



아테네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와 레몬 나무가 많은데 열리는 과실을 아무도 따지 않는다.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길가를 보고 있으면 알 수 없이 흐뭇하다. 일요일이다. 대충 머리를 묶고 어제 산 청바지를 입고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날씨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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