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them like a savage!
처음 태국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과일이었다. 람부탄이나 리치 같이 냉동으로만 접했던 것을 얼리지 않은 채로 산지에서 먹는 것은 얼마나 맛있을 지, 또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다른 과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 지도 궁금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망고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하나에 만원도 넘는 망고. 제주산 애플망고가 맛있다지만 개당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고,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난 노란 망고들도 국산 제철 과일에 비하면 비싼 것이어서 언제나 두당 하나씩만 먹을 수 있는 망고. 우리보다 먼저 태국에서 살았던 친구들로부터 ‘철만 잘 만나면 망고는 질리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너무 당연하게도 짐을 풀고 처음 한 일은 과일 가게를 찾는 것이었다. 코팡안의 동북쪽에 있는 수랏타니에는 과일을 파는 가게가 세븐일레븐 옆 한 군데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과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고 가격은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할 만큼 저렴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과일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망고는 없었다.
나는 실망하는 대신 (실망하기에 나는 너무 들떠있었다) 한 번도 못 본 과일들을 봉투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초록색 덩어리같이 생긴 것, 아기 주먹만한 사이즈에 뱀 가죽 같은 껍질을 달고 있는 것, 보라색 덩어리들. 양껏 담았는데도 삼천 원 정도였다. 집에 들어와 들뜬 마음으로 하나하나 해체해서 먹어보면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 이 초록색 덩어리는 슈가애플이라고 불리고 부다스 헤드(Buddha’s head)라는 별명이 있구나. 다시 보니 진짜 부처님 머리 같았다. 맛은 생크림 같았다. 이 뱀 껍질 같은 과일은 시르삭이라는 아이구나. 얘는 맛이 없었다. 이 보라색 덩어리가 말로만 듣던 패션프루트구나. 이 덩어리 중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씨앗 부분뿐이라니 진짜 신기하다, 그렇지만 다신 안 사 먹을거야, 등등. 그 중 특히 슈가애플은 나의 최애 과일이 되었고 나는 부처님 머리를 미친듯이 먹기 시작했다. 요거트에도 넣어먹고 바다에 가서도 먹고 그냥 자다가 일어나서 물 대신도 먹었다. 코팡안 외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하다가 방콕에서 우연히 한 번 만났는데 하나에 삼 천원정도 했다. 손이 떨려서 못 샀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다가 슈가애플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아저씨가 시즌이 끝났다고 했다. 낙심하며 파파야만 먹고 지내다가 드디어 망고 시즌이 왔다. 백 그램에 오십밧. 그때 시세로 1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대여섯 개를 담았는데도 300밧 정도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한 손으로는 운전하는 남편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망고를 들고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맥주를 시원하게 한 잔 먹고 드디어 망고를 물에 설렁설렁 흔들어 씻었다. 결전의 순간이 온 것이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최소 100m는 되는 이곳에 밤이 찾아오면 세상은 정말 속절없이 어두워진다. 집이 밝히는 불이 닿는 곳까지만 보이고, 그 외에는 적막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파티오의 난간에 선다.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망고를 깐다. 아주 잘 익은 망고는 마치 잘 익은 복숭아처럼 껍질이 벗겨진다. 세네 번의 손재간만으로도 망고는 그 속살을 쉽게 드러낸다. 미끄러우니 완전히 벗기지 않고 3/4쯤 벗겨졌을 때 마지막 1/4를 반쯤 벗겨 손에 쥐는 것이 더 편하다. 그대로 왕 베어 문다. 입 안에 가득 찬 달큰새콤함. 물이 뚝뚝 떨어지니 파티오 난간에 몸을 반쯤 걸친 채 먹어야 한다. 입가에는 망고물과 미처 입안에 들어가지 못한 과육이 잔뜩 묻어난다. 가끔 덩어리째 과육이 떨어지지만 아쉬워할 것 없다. 또 먹으면 되니까. 그렇게 먹어가다가 씨가 나오면 씨에 붙은 과육을 앞니를 사용해 모조리 갉아먹는다. 손에 남은 건 껍질과 씨뿐. 남편과 마주보자 둘 다 입가가 가관이다. 서로 히죽 웃어 보이고는 싱크대로 가 손과 입을 씻어내며 말한다. “진짜 야만인처럼 먹어 치웠네 We ate them like savages.” 가을과 겨울에 걸쳐 태국에 간다면 망고는 야만인처럼 먹을 것. 그 맛은 썰어 먹는 망고와는 차원이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