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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제이 Aug 04. 2021

크런치 브라우니

돈이 없으면 누구나 베어그릴스가 되는 곳, 코팡안.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지만 여행할 때는 좀 다르다. 여행에서 돈이 떨어졌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짐을 싸서 돌아가던가 구걸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에 나앉은 백인 여행자들이 많다 (그 외 인종은 본 적이 없다). 백패커(Backpacker, 여행자)가 아니라 벡패커(BegPacker, 구걸Beg+여행자Backpacker)라 불리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쌍하지만 열심히 자신의 여행을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이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제 나라에서라면 창피해서 못할 일을 서슴지 않고 하면서 착한 사람들의 등을 쳐먹는 놈들로 비춰진다.


우리가 여정에 올랐던 2017년 9월은 경제적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시간이었다. 비행기표며 일정을 모두 정해놓고 출발하기 이틀 전 남편이 원격으로 일하던 회사가 망했다. 그러나 구걸까지 가지는 않았다. 여행 시작 후 약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주로 번역을 맡았던 모 코인 프로젝트에서 두 개의 펀딩이 동시에 시작되었고, 우리의 경제적 위치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으로 다시 올라서게 되었다 (코인 프로젝트의 특성상 누구나 자체적인 PR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는 회사 메인 프로젝트와 독립적 프로젝트 두 개에 한 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때 나는 월급을 코인으로 받았는데, 당시 코인이 호황장이었기 때문에 하루 이틀이면 월급이 30%씩 올라있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 회사가 망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우리는 우리의 경제 생활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정말 돈을 아껴 썼다. 코팡안은 아주 물가가 저렴한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식사는 만들어먹었고, 심지어 간식도 만들어 먹었다. 구입하는 건 과일과 최소한의 생필품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야시장에 놀러 가는 날에는 이른바 ‘덮어 놓고 먹는’ 날이었다. 야시장에는 각종 꼬치구이, 생선구이, 과일주스, 심지어 개구리 뒷다리 구이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각종 꼬치구이, 태국 커리 몇 종류와 함께 과일 주스를 사먹었다. 통살라(Thong Sala)라고 불리던 이 동네에는 쇼핑할 수 있는 곳도 굉장히 많았는데, 남편이 100밧(3,500원 정도)짜리 바지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사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된다. 결국 바지도 사고 몇 가지 사고 싶어 했던 것들도 샀지만 난 아직도 남편이 뭔가 갖고 싶다고 할 때면 바로 사주어야만 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둘다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아마 시장표 식사가 엄청 깨끗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단 것이 몹시 먹고 싶었던 우리는 어느 날 큰맘 먹고 브라우니를 만들었다 (초콜릿 커버춰는 저렴하지 않았다). 다 구워진 브라우니를 보며 침을 질질 흘리다가, 개미떼의 습격을 피해 오븐 안에 브라우니를 넣어두고 함께 먹을 우유를 사기 위해 함께 편의점에 다녀왔다. 그리고 해가 너무 아름답게 지는 것을 바라보며 바다를 한참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침을 흘리며 오븐을 열었는데 브라우니 위로 개미떼가 바글바글했다. 우리가 올 것을 예상도 못했다는 듯 혼비백산하는 개미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나를 뒤로 하고, 남편은 용감하게 브라우니를 꺼내 개미를 싹싹 털어내고 브라우니를 잘라 냉동실에 넣어버렸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다시 브라우니를 꺼내 두 눈을 꼭 감고 한입씩 베어 물었다. 반쯤 언 브라우니 사이사이로 들어간 개미가 바삭바삭했다. “개미는 좋은 프로틴 공급원이죠.”라고 낄낄거리며 이야기하면서 꾹꾹 씹어 삼키는 브라우니에서는 절대 사용한 재료를 낭비할 수 없다는 우리의 굳은 결의와 가난의 맛이 났다.


나는 한국을, 남편은 미국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을 때에 우리는 절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커리어는 고사하고 직장도 없이 태국의 조그만 섬에서 살 때면 그 이유는 두 배로 강해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적당한 가벼움과 유머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1500원짜리 팟타이가 너무 비싸 집에서 간장에 떡진 국수를 볶아먹으면서도 내가 선택한 삶을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는 자긍심에서 피어난 감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나고 남편은 안정적인 직장도 찾았고 재테크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으며, 덕분에 지금 우리는 함께한 5년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가끔씩 브라우니 사이에서 바삭바삭한 맛이 느껴지면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며 “개미?!”를 외치곤 한다. 아쉽게도 그것은 초콜릿칩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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