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블제이 Sep 30. 2021

불가리아의 터키쉬

하산을 추억하며


하산Hassan은 소피아에서 작은 물담배바를 하는 터키 사내였다. 터키에서 나고 소피아에서 자란 그는 차로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시샤바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오곤 했다. 그의 가게에는 터키 남자들이 수백 수천 년 동안 마시고 피웠을 터키식 차와 물담배가 손님만큼 가득했다. 그는 머리가 아주 길고 눈가가 어두워 그야말로 투르크처럼 보였다. 크지 않은 키지만 몸이 다부져 그 조상들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특별히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는 않지만 일단 친해지면 무엇이든 퍼주었고, 언제나 자기의 고향의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가 무엇이든 퍼주는 것이 단순히 좋은 사람이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고향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굳게 믿는 것이 카르마라고 했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니, 좋은 것을 베풀면 좋은 것이 돌아오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 해도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의 가게에 들어서면 물담배의 수증기가 조명을 받아 더욱 뿌옇게 피어오른다. 소피아의 작은 뒷골목을 내다보는 창가 자리에는 낡고 푹신한 소파가 어두운 갈색 빛을 띠는 단단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게 놓여있었다. 명상하는 사람의 뒷모습이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는 벽화 아래에도 같은 크기의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왜 명상하는 사람이 그려져있는 지 의아해하다가 나는 곧 바의 이름이 'Om Shisha Bar' 였다는 것을 기억했다. 소파 자리는 대략 대여섯개쯤 되었는데, 각 테이블과 소파는 모두 다르게 생겼으나 비슷비슷하게 낡아 있었다. 작은 가게지만 바 자리와 소파 자리가 구별되어 있었고, 음악을 바꾸거나 계산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바 뒷쪽으로는 칵테일에 들어가는 각종 리쿼가 진열되어 있었다. 하산은 자기가 트는 음악에 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자부심이 아깝지 않은 음악이 대부분이었다. 샤잠이나 사운드 하운드와 같은 최신 어플을 이용해 나오는 노래를 찾아보려고 해도 잘 나오지 않는, 소비에트 시절 변방 국가의 트립합 같은 것이 나왔다. 나는 때때로 하산에게 물어 노래 제목과 가수를 적어오기도 했지만 유튜브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때가 많았다.


손님이 물담배와 음료를 주문하면 대개 음료가 먼저 나왔다. 찻잔은 놀라울 정도로 품격있었고, 찻잔과 소서, 스푼이 늘 함께 나왔다. 어느 다른 커피숍처럼 덜렁 머그잔만 나오는 일은 결코 없었다. 물담배도 그 맛이 수십 가지에 달해서 고르는 맛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가게에서도 애플, 체리, 멜론, 민트와 같은 종류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하산의 가게에는 특별한 이름이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오버 더 레인보우 (다양한 과일 맛이 한 번에 났다), 썸머 소르베 (역시 과일 종류이나 복숭아 맛이 진하게 났다), 피지 콜라 (예상할 수 있듯이 콜라맛이다) 등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친구들만 피울 수 있는 레프트오버Leftover 였다. 레프트오버는 팔다 남은 물담배의 작은 조각들을 모두 모아 섞은 것이었는데, 오래된 것도 섞여 있다고 겁을 주었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하산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조심스레 나누어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는 언제나 평일 저녁에 갔는데, 손님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때때로 손님이 있는 날이면 하산은 어른스럽게 손님의 시중을 들었으나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그러다 마지막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하산은 곧바로 셔터를 내렸다. 그리고 나서는 우리의 시간이었다. 창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레프트오버를 피웠고, 하산은 자기의 냉장고를 열어 원하는 맥주, 원하는 음료를 아낌없이 내주었다.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웬만해서 머리도 감지 않고 특별한 헤어팩을 손수 만들어 머릿결을 관리한다고도 했고, 얼음으로만 목욕한다고 하기도 했으므로 그의 수면 스케줄에 관한 사실 여부는 좀처럼 감을 잡기 힘들었다. 또한 그는 '러시아인은 정말 머리가 비상하다' 든가 '불가리아 놈들은 전부 사기꾼이다', '나는 여자가 너무 나대는 것을 싫어한다'와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늘어놓았는데, 나는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진절머리나게 싫어하는 타입이지만 웬일인지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음,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그것을 B는 언제나 재미있게 여겨서, 시샤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그런 나를 놀려대곤 했다.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산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을 진정으로 믿어서라기보다 정말로 그러한 내용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눈을 똑똑히 바라본다는 것도 이러한 나의 짐작을 뒷받침하곤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아시아인의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놀다가 길에 남은 불빛이라곤 가로등밖에 없게 되면 우리는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하산은 우리의 계산 요청을 정중한 목소리로 일관되게 거부했다. 때때로 우리가 현금을 들이밀고 뒤돌아서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받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날이라고 하더라도 셔터가 내려간 이후의 계산은 절대 받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카르마'라고 이야기하면 우리는 마법 주문이라도 들은 듯이 수긍하곤 했다. 셔터가 내려져 있어 우리끼리 문을 열기 어려우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하산은 언제나 길거리까지 나와서 마치 우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배웅했다. B와는 허그로, 나와는 악수로 인사했는데, 나는 그것이 몹시 하산답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의 가게에서 쏟아지듯 나오면 노란 전봇대 빛만이 남아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 삼 분 밖에 걸리지 않는 우리의 아파트로 들어갈 때까지 나는 하산을 생각하곤 했다. 터키와 불가리아의 경계에서 태어나 강제 이주를 몇 번이고 겪었다던 그의 어린 시절과 매달 24시간 운전하여 터키로 돌아가는 삶에 관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크런치 브라우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