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에 뭐할거예요?

by 이유진

육아휴직 전, 마지막 출근일이었던 지난주 금요일. 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개발자와 티타임을 했다.

'육아휴직 기간에 뭐할거예요?'라는 수십번도 더 들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AI 시대에서 우린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라는 이야기로 주제가 확장되었다.


나 역시도 작년말부터 일하면서 ChatGpt를 쓰기 시작했다. 기획자인 나는 주로 Gpt를 구글링 대신으로 많이 사용했다. 구글보다 Gpt가 좋은 점은, 구글은 내가 정확한 ‘개념’을 키워드로 입력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ChatGpt는 머릿속으로 멤도는 ‘추상적인’ 관념에 대한 질문을 던져도, 그 질문을 그야말로 ‘추상화’하여, 답변을 ‘개념’으로 뱉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경험은 약 한달 전, Gpt가 완벽에 가까운 회의록을 만들어줬을때였다. 수많은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오고갔던 어떤 회의에서 스크립트에 가깝게 날것으로 작성된 회의록을 그대로 Gpt에 붙여넣고 “회의록으로 정리해줘” 라는 프롬프트만 입력해봤다. 그랬더니 몇 초도 안되어 해당 회의의 ‘핵심 아젠다’ ‘주요 논점’ ‘to do list’까지 놀랍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을 보고, ‘와 앞으로 회의록 정리에 힘뺄 필요 없겠다’고 안도한 동시에, 내가 2025년에 신입사원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안도했다. 라떼는 회의록은 신입 또는 막내가 쓰는 것이었기에 나 또한 신입사원이었던 아득히 먼 옛날, TBWA 카피라이터가 쓴 ‘우리 회의나 할까’ 라는 책을 보며, 회의록을 잘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기 때문이었다.


여튼 이렇게 업무에서 각자 AI를 사용했던 경험들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며,

“이렇게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일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월등히 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결코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왜냐면 인간은 애초에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노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일을 하는게 언제부터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결국 긴 인류의 역사에서 산업화가 되기 시작한 이후 즈음부터 아닐까? 이미 고도의 산업화가 되어버린 세상속에 내던져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서 내가 한 조각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쓸모 있는 사람’ 이 되는 것을 당연히 추구해야하는 가치로 여겨왔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내야했다. 쓸모가 약해지거나, 없어지면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위기에 직면하곤 한다.


우리의 쓸모 이유 였던 여러 task들을 AI가 대신하게 되면, 다시 실존적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내 일에 대한 본질을 잘 알고 있다면 AI를 내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내 ‘실존’을 도와줄 조력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그 개발자와 함께 쭉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앞으로 내가 육아휴직 기간에 뭘 해야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내가 하는 개발이라는 것도, 결국 어떤 일을 ‘자동화’ 하고, ‘프로세스화’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이걸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분야인 ‘OO업’에 적용하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아주 ‘대박’까지는 아니겠지만 먹고 살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이제 방점을 찍어야 하는 쪽은 '나의' 이다.

여기서의 ‘’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해가며 만들었던 'ego'가 아닌, 본래 내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었던 'self' 이다. 그리고 이 self는 우리의 난잡한 머리를 굴려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나는 인공 ‘지능’ 시대일수록 인간의 답은 ‘머리’ 가 아닌 ‘가슴’ 에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 가슴을 열어 젖히는 것. 그 가슴 사이로 따뜻한 에너지가 흐르는 것을 느끼는 것. 이것으로 충분하다 느끼는 것. 그렇게 오롯한 ‘자기’ 로 깨어난 개인들이 많아지고, 이러한 '나'를 기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세상 속에 내던질 수 있는 세상. AI시대는, 어쩌면 그동안 인간이 잠시 잊고 있었던 ‘자기다움’을 회복하고, 보다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반년동안의 육아휴직 기간동안에, 일단 나는 나 스스로를 가지고 실험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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