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에 12년전 끄적인 메모를 넣어보았더니..

요랬는데 요래됐음당

by 이유진

가끔 예전에 썼던 노트를 펼쳐보거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과거의 내가 썼던 글들을 보곤 한다.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비단 역사적인 사건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도울 수 있음을 믿기에.





원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어떤 생각의 흐름, 사유의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하는 방식을 엿보기 위함.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겪는 오류. '모든 걸 다 안다.'라는 것.

누가 어떤 개념을 제시했고, 주장했고.. 그런 건 지식이 될 수 있으나 쓸 수 있는 건 술자리 자기자랑.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걸 엿보는 게 중요.

드라마를 안보고 네이트 기사만 봐도 내용을 다 알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안에, 배우들이 어떤 표정을, 감정을 연기했고 어떤 감정선들이 녹아들어 있는지는 기사를 보고서는 절대 알 수 없다.

한 시간의 드라마를 다만 몇 줄로 표현할 수 있는 걸로만 봐도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생략되었는지 알 수 있다.

생각하는 힘,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기 위한 독서. 독서를 위한 독서, 지식활동을 위한 독서는 별 의미 없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 근육은 쓰면 쓸 수록 단련된다.

-2013.1.9-


원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2013년 1월에 노트에 썼던 글이다. 그냥 떠오르는대로 끄적였기에, 글 자체는 거칠지만 독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철학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된 글이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생각이다.

당시 이 글을 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그 때 다니던 첫 회사의 이사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그 때, 이사님한테 바로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내내 하곤 했다. 당시 나는 그럴 여력이나 용기까지는 없었던 사회 초년생이었고, 그 다음해 내가 첫회사를 퇴사하면서 더더욱 물어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하지만 항상 한켠에 어떤 궁금증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이걸 물어보거나,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어제 새벽 이게 정말 궁금해졌다. 그래서 위 글을 쭉 복사해서 GPT에 붙어놓고 "이런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한 철학자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의 답변이 여기까지 였다면, 나는 여기서 GPT를 종료하고 쿠팡에 가서 가다머와 한나 아렌트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을거다. 하지만 GPT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결과물이다.



ver 0.1 날것 정리 버전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가 위에서 소개해준 철학자들의 사상을 인용해서 조금 더 확장시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주문했다.





ver 0.2 철학자 인용 버전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GPT는 나를 챌린지했고, 스스로를 챌린지했다. 다소 딱딱한 텍스트가 걸려서,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카를로 로빌리의 톤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해보았다.




ver 1.0 철학자 인용 + 톤 워싱 버전


생각하는 근육을 위한 독서 — 우리는 왜 원전을 읽어야 할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가끔 착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제 꽤 많이 아는 것 같아.’ 누가 어떤 개념을 처음 말했고, 무슨 주장을 했고, 어느 사조에 속하는지 줄줄 외우게 되면, 그런 생각이 더 쉽게 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복잡할 땐 그런 지식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는 것 같은데, 생각이 굴러가지 않는다. 그럴 때 문득 깨닫게 된다. 지식은 쌓였지만, 사유는 깊어지지 않았구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누군가가 어떤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어떤 의문을 품고, 어떤 벽을 만나고, 어떤 길을 돌아 나왔는지를 따라가 보는 일.
바로 그래서 우리는 원전을 읽어야 한다.

누군가 대신 정리해 준 요약본은 마치 뉴스 기사 같다. 드라마를 직접 보지 않고 기사로만 줄거리를 접했을 때처럼, 흐름은 알 수 있지만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의 표정, 눈빛, 미묘한 침묵의 길이 같은 건 사라진다. 사유도 마찬가지다. 요약된 개념 뒤에는 늘 생략된 생각의 곡선이 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야기했다. 아렌트에게 ‘사유’는 단지 지적인 활동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악을 저지른다”고. 그 말이 처음에는 낯설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미셸 푸코는 지식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늘 어떤 맥락과 권력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봤다. 단순히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구나’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 그것이 진짜 앎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생각이란 늘 ‘모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가다머는 말한다. 읽는다는 건, 텍스트와 대화하는 일이라고. 텍스트는 고정된 정보가 아니라, 그때그때 새롭게 말을 건네는 생명체다. 우리가 원전을 읽는 건 그래서다. 한 철학자가 남긴 오래된 문장을 통해, 지금의 내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게 되는 그 과정. 그게 바로 생각하는 힘, 다시 말해 사유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지 아는 것보다, 느리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느린 생각은, 삶을 훨씬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12년 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에서 시작한 새벽의 chatgpt와 대화가,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수 있는 정도의 글을 탄생시켰다. 물론 완전히 100% 마음에 드는 텍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것을 시작한 이유가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함은 아니었기에, 이대로도 충분하다. 그대로 잠들려는 찰나, 한 가지 질문이 다시 나를 덥쳐왔다.

내 아이가 맞을까요?


결국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 3시에 잠들었다.

일단 지금은 애를 씻겨야 해서 이 이야기는 내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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