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듣는 음악의 시대

클럽에서 방구석, 그리고 청음실로. 음악소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by 이유진

최근 성수동 한복판에 청음실이 새로 생겼다. 그것도 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 꽤 큰 규모의.

이 글은 오늘 <성수율>에 다녀오고 난 후 쓰는 글이다.


청음실이나 LP 바는 이전에도 있었다. 망원, 합정, 이태원 골목 어딘가에서, 돈 좀 있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장님들이 자기 실현의 공간에 가까웠다. 그러나 <성수율>은 결이 조금 다르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자회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성수동에 닻을 올렸다. 소수의 취향이었던 영역이 산업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신호로 느껴지는 건, 아직 섣부른 생각일까.

오늘 다녀온 <성수율 뮤직>, 내가 신청한 곡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음악을 딥하게 소비해왔다. 스무 살이던 2006년,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의 공연을 보러 홍대 클럽에 혼자 간 것이 시작으로, 한 때는 그 레이블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도 꽤 다양한 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평소에는 130만 원짜리 슈어 하이엔드 유선 이어폰으로 본연의 사운드를 음미하고, 무선 이어폰으로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용도로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에 가서 그들이 뿌려주는 사운드의 세례를 받기도 하고, 동네 청음실이나 LP 숍에 들러서 듣고 싶었던 음악들로 샤워를 하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듣는 음악은 조금씩 변해왔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인생의 어떤 스테이지에 서 있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졌다. 파이팅이 필요한 20대 시절에는 힙합을 주로 들었고, 한 템포 멈춰 서서 현재의 나를 살펴보는 30대에는 소울이나 클래식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 나이를 먹어왔다.


그랬기에 동시대에 어떤 음악이 주류로 소비되고, 사람들이 그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가 그 시대의 집단 정서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정서를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서점에 가보는 것, 유튜브 알고리즘을 살펴보는 것 등. 그러나 책과 영상 콘텐츠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욕망'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반면 사람들의 무의식, 감정, 정념—동시대 사람들의 ‘영혼’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매체는 음악이다. 그리고 지금이, 무언가 변화가 감지되는 시점이라고 난 생각한다.


변화의 조짐을 처음 느낀 것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였다. 얼마 전부터 추천 릴스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정말 좋은 사운드의 R&B, 소울 음악들—그리고 방구석에서 혼자 키보드와 미디로 연주하는 프로듀서들의 영상이 대거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정을 들어가보면 팔로워가 적게는 2–3만, 많아도 20만 정도 되는 신예들이었다. 그들의 사운드는 2000년대 이래 주류를 지배해온 ‘빅 사운드’—클럽을 채우고 페스티벌 무대를 흔들던 그 압도적인 볼륨—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밀하고, 취약한 자기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음악이었다.

내 인스타그램 리포스트를 지배하고 있는 신예 아티스트들

모르긴 몰라도, 음악의 주류 장르와 소비 패턴이 코로나 이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대한 요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클럽에서 방구석으로, 방구석에서 다시 청음실로. 이 20년간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조건과 기술과 미디어의 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과 정서가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전체적인 기획과 구조는 순수 창작, 관련 논문 및 사례 인용 등은 AI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1. 빅사운드, 거대 군중의 시대 (2000년 초~ 코로나 이전)



빅 사운드의 시대: EDM, 힙합, 하우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대중음악의 문법을 지배한 것은 압도적인 볼륨과 집단적 쾌감이었다. EDM이 그 중심에 있었다. 데이비드 게타를 대표로 한 DJ들은 마치 연단에 선 신과 같은 모습이었고, 신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 처럼 그들이 드롭을 터뜨리는 순간 수만 명이 동시에 점프하는 모습은 이 시대 음악 소비의 원형이 되었다. 코첼라, UMF와 같은 대형 페스티벌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순례가 되었고, ‘축제에 다녀왔다’는 것 자체가 정체성의 일부였다.


힙합 역시 이 시기의 또 다른 축이었다. 2000년대의 힙합은 클럽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Lil wayne, T.I 등을 필두로 서던(Southern) 힙합부터 2010년대의 트랩에 이르기까지, 힙합의 주류는 일관되게 ‘큰 소리, 큰 무대, 큰 군중’을 지향했다. 베이스가 가슴을 울리고, 드럼이 쉴 새 없이 내려 꽂히는 비트의 진가는 클럽의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몸으로 느낄 때 비로소 드러났다. 이들의 음악은 언제나 군중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었다.


하우스 뮤직은 대형 베뉴의 단골 사운드트랙이었다. 한국에서도 이태원과 강남의 클럽들이 전성기를 누렸고, 워터밤이나 월드 DJ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여름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이 시기 음악의 핵심 경험은 ‘함께 모여서 열광하는 것’이었다. 관객은 '군중의 일원' 이었고, 음악 산업은 '공동체적 열광을 상품'으로 팔았다. 이 시기의 음악을 듣는 경험은 '이벤트'에 가까웠다. 음악은 곧 사회적 행위에 가까웠다.



과시의 언어, 그리고 균열

그렇기에 이 시대는 소위 '파티에서 터지는 음악'이 주류였다. 그러기 위해선 '빅 사운드', 크고 웅장한 사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크고 웅장한 사운드에 어울리는 가사는 소위 swag, 즉 '과시'의 언어였다.


힙합은 이 흐름을 전면에서 이끈 장르였다. 2011년에 나온 Jay-Z와 Kanye West의 ‘Watch the Throne’은 제목부터 왕좌를 내려다보라는 선언이었고, 앨범의 컬러는 금빛으로 찬란했다. 내가 사랑했던 Rick Ross 매 앨범마다 슈퍼카, 저택, 요트를 등장시켰고 엉덩이를 깐 여자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국내에서는 2011년 일리네어가 등장하며, '돈'을 주제로한 랩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처음 국내 힙합팬들에게 적잖은 반감을 샀지만, 결국 이 가사와 사운드는 시대와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히 타고 올랐다. 쇼미더머니가 힙합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였고, 힙합은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국의 메인스트림이 되었다. 과시의 언어가 대중의 언어가 된 것이다.



나도 얼마나 많은 일리네어 공연에서 일리네어 사인즈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과시의 이면에서 균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후반, 주류 음악 안에서 자기 취약성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목소리들이 등장했다. kid cudi는 우울증과 정신건강 문제를 음악의 전면에 놓은 선구자였고, 그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이 하나둘 뒤를 이었다. Juice WRLD는 불안과 약물 의존을 날것 그대로 가사에 담았고, XXXTentacion은 폭력성과 취약함을 동시에 드러내며 기존 힙합의 마초적 문법을 뒤흔들었다. 이 즈음 한국에서도 우원재가 쇼미더머니에서 '정신과 알약' 을 소재로한 랩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이 균열은 코로나 이후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과시의 음악이 작동하려면 그것을 함께 소비할 군중이 필요하다. 클럽에서, 페스티벌에서, 파티에서—강함을 과시하는 노래는 집단적 맥락 안에서 비로소 빛난다. 그런데 군중이 사라지면? 집에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내가 제일 잘 나가’는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반면, 취약함을 고백하는 음악은 혼자 있는 방에서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 2010년대 후반에 싹을 틔운 이 내밀한 목소리들이 코로나라는 강제적 고립과 만나면서, 비로소 시대의 주류로 부상하게 된다.





2. 혼자 듣는 스몰 사운드의 시대 (2020~2022년)


갑작스러운 침묵, 그리고 전환

2020년 초, 팬데믹은 라이브 음악 산업을 순식간에 정지시켰다. 국내외 페스티벌은 취소되고, 홍대와 이태원의 클럽은 문을 닫았으며, 콘서트홀은 텅 비었다. 음악이 언제나 존재하던 ‘바깥 공간’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향했다. 코로나 시기 음악 청취 경험을 연구한 최희진의 논문(2021)에 따르면, 인터뷰 대상자의 76%가 팬데믹 이후 음악 선곡 성향이 변했다고 응답했다. 주요 원인은 ‘음악으로 집에서 유토피아 찾기’, ‘개인 시간 증가에 따른 새로운 음악 탐색’, ‘코로나 블루 극복’이었다.


R&B와 소울의 귀환: 취약함이 언어가 되다

빅 사운드가 지배하던 자리에 조용한 목소리들이 들어왔다. 이 시기 음악적 지형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R&B와 소울의 재부상이다. 물론 R&B는 언제나 존재하던 장르다. 하지만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주류 R&B는 어셔, 크리스 브라운, 위켄드처럼 클럽 친화적이고 프로덕션이 화려한 방향으로 진화해 있었다. 코로나 이후 떠오른 R&B는 결이 달랐다.


다니엘 시저, SZA, 스티브 레이시 같은 아티스트들이 이 시기 주류 차트의 중심으로 올라왔다. (아마도 이들의 선구자는 프랭크 오션일테지만, 그는 8년째 앨범을 내고 있지 않다.) 이들의 음악에는 공통점이 있다. 프로덕션이 미니멀하고, 보컬이 과장되지 않으며, 가사가 극도로 개인적이다. 자기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혹은 그것 자체가 미학이 된 음악. 빅 사운드가 ‘나를 잊게 해주는’ 음악이었다면, 이 새로운 R&B는 ‘나를 마주하게 하는’ 음악이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었다. 콘서트 무대보다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R&B·소울 뮤지션들—이들의 음악은 작은 방에서 만들어졌고, 작은 방에서 들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방음이 완벽하지 않은 자취방, 이어폰 너머의 속삭임 같은 보컬, 밤늦게 혼자 듣기에 최적화된 무드. R&B와 소울이 이 시기의 시대정신과 맞닿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디 포크, 베드룸 팝, Lo-fi: 침실의 사운드트랙

R&B·소울과 나란히, 인디 포크와 베드룸 팝도 메인스트림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메인스트림 팝을 버리고 인디 포크 앨범 <Folklore>를 발표한 것은 이 전환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피비 브리저스의 우울하고 내성적인 <Punisher>, 피오나 애플이 자택에서 녹음한 <Fetch the Bolt Cutters> 도 비평적 찬사를 받으며 시대의 사운드를 대표했다.


Lo-fi 힙합 역시 이 시기의 상징이다.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음질, 레코드판 잡음 같은 질감을 특징으로 하는 lo-fi는 클럽 사운드의 정반대편에 위치한다. 주의를 강하게 끌지 않으면서 공간을 부드럽게 채워주는 이 음악은 격리된 일상의 완벽한 배경음악이 되었다. 유튜브의 ‘lofi hip hop radio’ 채널은 수억 회의 재생을 기록했다. Dsouza 등(2025)​의 연구에 따르면 lo-fi 음악은 젊은 세대의 학습·작업 시 집중력 도구이자 정서적 자기돌봄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이 위로가 된 시간

장르의 전환 이면에는 음악의 기능 자체가 변한 측면이 있다. Krause 등(2025)의 연구에 따르면, 호주 대학생 296명 중 67%가 팬데믹 기간동안 '음악의 가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적 연결감을 주고, 위안을 제공하는 음악의 기능이 팬데믹을 계기로 강하게 부각된 것이다.


Frontiers in Psychology에 발표된 ‘Shifting Listening Niches’ 연구(2021)는 ‘리스닝 니치’라는 개념을 통해 이 변화를 추적했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매체로 듣는가라는 청취 맥락 자체가 전환된 것이다. 함께 듣던 음악은 혼자 듣는 음악이 되었고, 그에 어울리는 장르—R&B, 소울, 인디 포크, lo-fi—가 자연스럽게 시대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3. 함께 모이되, 각자 체험하는 시대 (포스트 코로나~ 현재)


청음실의 부활, 새로운 음악 공간의 탄생

팬데믹이 종식된 후, 사람들은 오프라이에서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처럼 클럽이나 페스티벌로만 돌아간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제3의 공간이 생겨났다. 청음실, LP 바, 음악 감상 카페, 오디오 뮤지엄 같은 공간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4년 서초구에 문을 연 ‘오디움(Audeum)’은 세계 최초의 오디오 박물관을 표방하며, 19세기 축음기부터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까지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남양주의 '레브델' 은 넓은 공간과 예술작품,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의 아지트인 강동구의 '백지화'는 평소에는 신청곡으로 운영되는 청음실이지만, 매 주말마다 아티스트 특집이 운영된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사람들이 물리적으로 함께 모이지만, 음악 체험 자체는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왼쪽부터 서초구 <오디움>, 남양주 <브레델>, 강동구 <백지화>


장르의 복합: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음악적 지형은 어느 한 장르로 수렴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전 두 시기와의 결정적 차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EDM과 힙합이, 코로나 시기에는 R&B·소울과 인디가 각각 시대를 대표했다면, 지금은 이 모든 것이 공존하면서도 소비되는 방식이 달라졌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시기 억눌렸던 집단적 에너지가 폭발하듯 돌아왔다. 하이퍼팝의 클럽 회귀, 페스티벌 시장의 폭발적 반등, 디스코와 하우스의 팝 내 재부상이 그 증거다. 동시에 코로나 시기에 부상한 내밀한 음악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니엘 시저와 SZA는 여전히 차트 상위권이고, lo-fi와 앰비언트는 이제 완전히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정착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두 흐름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한다는 점이다. 같은 사람이 주말에는 페스티벌에서 EDM에 몸을 맡기고, 평일 밤에는 청음실에서 눈을 감고 재즈를 듣는다. 아침에는 lo-fi를 틀어놓고 일하다가, 저녁에는 R&B 플레이리스트로 전환한다. 음악 소비가 ‘하나의 장르에 대한 충성’에서 ‘맥락에 따른 전환’으로 이동한 것이다.



청음실이라는 역설: 따로 또 같이

이 복합적 지형 위에서 청음실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클럽에서 같은 비트에 몸을 맡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청음실에서는 각자 눈을 감고 자신만의 소리에 집중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청취 경험은 철저히 개별적이다.


이 역설적 공간을 이해하는 데, 나는 무려 한나 아렌트의 '공동 세계' 개념을 적용해보는 과감한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동 세계를 '탁자'에 비유했다. 탁자는 그 둘레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동시에, 서로가 뒤섞이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시켜준다. 결합과 분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 아렌트에게 공동 세계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되, 각자의 고유한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다원성이 보존되는 공간.


클럽은 탁자가 없는 공간이었다. 모두가 하나의 비트 안에 녹아들었고, 개인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지워졌다. 거기에는 결합만 있었고 분리는 없었다. 그것이 클럽의 쾌감이자 존재 이유였다. 반대로 코로나 시대의 방구석은 탁자만 있고 둘레에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다. 분리만 있었고 결합은 부재했다. 이어폰 너머의 음악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경험을 함께 나눌 타인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의 댓글창에 모여들었다.


청음실은 비로소 아렌트적 의미의 탁자를 복원한 공간이다. 같은 방에 앉아 있지만, 각자 다른 각도에서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는 스피커 정면의 스위트 스팟에서 사운드의 묘미를 느끼고, 누군가는 구석 자리에서 공간감을 즐긴다.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각자의 귀에 도달하는 소리는 다르고, 그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감정은 더더욱 다르다. 청음실의 음악은 탁자처럼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주면서도, 각자가 고유한 청취 경험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한다.


아렌트가 경고했던 것은 이 탁자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탁자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서로 위에 쓰러지거나, 아예 흩어져 버린다. 2000년대의 클럽 문화가 전자에 가까웠다면, 코로나 시대는 후자였다. 포스트 코로나의 청음실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탁자를 다시 세운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공동의 것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느끼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그런 거리감을 회복한 것.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다. 청음실은 단순히 ‘함께 있되 각자 듣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나는 청음실에서는 내 신청곡이 나올 때,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취미가 있다. 내가 아끼던 곡이 타인의 표정을 바꾸는 순간, 혹은 누군가의 신청곡이 예상치 못하게 내 마음에 스미는 순간. 이것은 클럽에서 DJ가 일방적으로 틀어주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클럽의 관객은 군중이었다. 청음실의 관객은 주체다. 자신의 취향을 가지고 참여하며, 타인의 취향과 조용히 교차하는 개인. 청음실은 리스너를 수동적 소비자에서 능동적 큐레이터로 전환시킨다. 내가 청음실을 사랑하는 이유다.




끝내며: 사운드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돌이켜보면, 음악 소비의 20년사는 ‘함께 --> 혼자 --> 함께이지만 각자’라는 궤적을 그린다. 장르로 보면 ‘EDM·힙합·하우스 --> R&B·소울·인디·lo-fi --> 복합’이라는 흐름이다. 그리고 이 두 축은 서로를 반영한다. 집단적 열광에 최적화된 장르가 지배하던 시대, 내밀한 감정에 기대는 장르가 부상한 시대, 그리고 모든 것이 공존하되 듣는 방식이 분화한 시대.


이것은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음악을 통해 관계와 고독,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Tia DeNora는 <Music in Everyday Life> 에서 음악이 일상적 자기 조절의 도구로 작동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통찰은 청음실에 앉아 눈을 감고 빈티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실현되고 있다.


AI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은 점점 ‘도구’로서의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일—인간이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온 그 영역들이 하나씩 기계에게 넘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깊이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낮 동안에는 AI에 대체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닦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생산성을 증명하고, 아직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사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조용해진 방 안에서 그 질문이 돌아올 것이다. 도구로서의 나를 모두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사람들이 손을 뻗는 곳이 음악이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에서 얘기했듯, 음악은 언제나 인간의 영혼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었다. 과시가 필요한 시대에는 과시의 음악이, 고립된 시대에는 위로의 음악이, 다시 모이되 각자이고 싶은 시대에는 청음실의 음악이 그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실존적 위기의 시대에는 어떤 소리가 그 거울이 될까.


아직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때도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누구 곁에서 듣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영혼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성수동 청음실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사람들처럼, 미래의 누군가도 어딘가에 앉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 소리가 어떤 모양, 어떤 모습일지, 꽤 기대하고 있다.



ps. 본 칼럼의 초안은 <성수율>에서 구상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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