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AI발 테크계 해고 칼바람을 맞다

독일의 '조용한 레이오프'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by 노마드윤

미국에서 하루아침에 이메일로 해고 통보를 받는 사건들을 뉴스나 틱톡, 유튜브 등에서 보는 게 이제는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독일은 그렇다면 어떨까?


나는 독일 베를린의 몇 안 되는 테크 대기업에서 일하는 11년 차 프로덕트매니저이다.

독일에서 한참 IT필드의 전문 인력들을 미친 듯이 끌어들일 때 코로나 바람까지 불어 더 수급이 어려워진 시점까지 겹쳐 운 좋게 독일 회사로 이직하게 된 순수 한국출신의 피엠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이제 알다시피, AI가 불어온 엄청난 변화 그리고 전쟁등으로 더 악화된 전 세계 경제 상황 등이 모두 겹쳐 이제 늘 장밋빛일줄말 알았던 IT시장은 암흑기로 접어들었고, 미국은 빅테크, 스타트업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잘려나간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들린다.

유럽, 특히 독일은 노동법이 강해 하루아침에 해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조직의 한 실을 날리는 구조조정은 가능하지만) 독일 망했다는 뉴스는 많이 보이지만 생각보다 해고돼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미국만큼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정말 '나이브'하게 회사를 다니던 나에게 이 칼바람이 불어왔고,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내 주변에 그런 일을 겪었고 겪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독일의 칼바람은 미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분다

미국이야 정말 해고해 버리면 끝이지만, 노동법이 정말 강한 독일은 회사가 마음대로 사람들을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레이오프를 진행하게 된다.

2023년 이 회사에서 대대적인 레이오프 진행예고를 했었고, 법적인 절차에 따라 레이오프 계획과 레이오프 대상자에 대해 어떤 옵션을 줄지에 대한 설명을 상당히 정성 들여했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나가게 된 사람은 26명이 불과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 레이오프는 대실패로 끝난 거였다. (오히려 이때다 싶어 이직해 버리는 실력 있는 사람들만 더 잃었다)


2026년, 이 회사는 이 실패를 계기 삼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레이오프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Silent cut-off. 공식용어는 아니고, 내가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첫 번째 방법은 내보낼 사람들을 대상으로 느닷없이 퍼포먼스 트집이나, 행실 트립을 잡는다. 그러면서 PIP (performance increase plan)에 넣는다. 이 플랜은 실제로는 정말 퍼포먼스가 안나는 직원을 서포트를 회사차원에서 하기 위해 보통 리드들이 넣는 건데, 이걸 사람을 나가게 만드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이 플랜에 들어간 직원은 이미 멘털에 대미지를 50% 정도 받게 되고, 이 상황에 웬만한 사람들은 더 이상 다닐 동기부여를 잃는다.

그러나 PIP는 사실 아무리 해봐야 독일에선 해고의 이유가 법적으로 되지 못한다. 사람을 내보내려는 목적일 경우에 그냥 트집 잡고 사람 괴롭히기의 수단으로 쓰이는 고약한 방법일 뿐이다.


두 번째 방법은 MTA를 던지는 거다. Mutual Termination Agreement인데, 보통 보상으로 세버런스를 제시하고 (최소가 0.5 - 최대 2.0 * 다닌 년수 * 평균 세전 월급여) 가든리브 (일은 실제로 안 하지만 고용이 되어 있어 월급은 들어오는 상태)를 최소 3개월 최대 X개월 제시한다.

PIP를 이미 받은 사람은 더 MTA를 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PIP를 먼저 던지고 MTA를 던지는 수법을 쓰기도 하고, PIP에 넣는 것에 리드가 반대를 하거나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경우에는 바로 MTA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MTA는 사실 거절하면 그만이다.


세 번째 방법은 PIP를 해도 안 나가고 MTA를 제시해도 거절할 경우, Abmahnung을 보내는 방법이다. 고용주가 '경고장'을 보내는 방법인데, 법적으로는 1번만 보내도 해고의 절차를 밟은 거라고 보지만 보통 work council이 있는 경우 3번을 보내게 되어 있고 이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이 경고 자체가 부당하거나 전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는 것을 트집 잡아 경고하면 아무리 보내도 해고의 이유가 되지 않아 해고가 불가능하다.


보통은 세 번째 방법까지 잘 안 가는 거 같고, PIP와 MTA의 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간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 과정들이 대부분 오픈되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조용히 없어져있거나, 어떤 팀이 없어져 있는 방식으로 결과를 보게 된다.


마지막은 팀 별로 통째로 내보내는 방식인데, '실 단위'로 팀의 구성을 조정하며 내보낼 사람들을 한 팀에 모은 다음에 그 팀을 통째로 레이오프 하는, 법적으로는 사실상 합법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를 월단위로 시차를 주며 진행해서, 사람들이 단합하고 정보 공유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고 있다.


미국에 비해 이게 더 잔인한가? 아니면 차라리 이게 시간을 벌어주니 이게 낫나?



충격주는 것은 미국이 더 하지만, 사람 피 말리는 건 독일이 더 한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최근 PIP를 받았다. 그런데 왜 내가 받았을까?

거기에 대해 사실 엊그제 본 이 Joma라는 유투버의 영상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Joma의 영상의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을 하자면...

- 코로나 시절 테크기업들은 넘쳐나는 온라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인력을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뛰어나지 않은 인재 혹은 기술은 있지만 열정은 전혀 없는 기회주의자들도 높은 연봉을 받으며 빅테크에 입사하게 된다.

- 너무 커진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회사는 느려지더라도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360도 평가, 분기별 목표 수립 및 셀프 평가 등등)를 마련해 많은 인력을 관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에 한계는 왔고, AI의 바람을 타고 AI를 사용하는 높은 ROI를 내는 적은 인력만 남기고 싶은 시점에 도대체 누구를 남겨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 결국 회사는 대규모로 해고를 하고 다시 정말 필요한, ROI가 높은 사람들을 다시 뽑는 방식을 택한다. (엄청 얽힌 케이블이 다 멀티탭 몇십 개에 꼳혀있다면 꼳힌채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느니, 다 빼고 꼽는 게 낫다는 것과 같은 원리다)

- 결국 여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Joma는 1) ROI가 높은걸 잘 보일 수 있는 조직이나 도메인을 맡거나 2) 몸값을 쓸데없이 높이지 않거나 (승진에만 힘쓰지 말라는 뜻) 3) 나를 잘 지켜줄 수 있는 리더 밑에서 친밀한 관계를 쌓거나 4)이게 다 아닐 경우 빠르게 다시 취업이 될 수 있는 포트폴리오 경력과 AI기술을 익히라고 조언한다.


결국 내가 해고의 대상자가 된 이유는 아래 두 가지다.

1. 내가 가지고 있는 Domain이 이 B2B사업에서 Revenue를 벌어들이는 도메인이 아니다. 즉 내 개인 ROI가 높아봤자, 회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영역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2. 나를 지켜줄 리드가 1달 전에 나가고 회사의 개가 기꺼이 되어줄 사람이 우리 팀의 '임시 리드(M양)'로 왔고 그 '임시리드'와 나의 시작이 좋지 않았다.


내 유튜브 저번 영상에서는 M양이 주도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이 M양을 Work council에 고발하려고 했었는데,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M양이 기여한 건 사실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Silent Cut-off(조용한 해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 노마드윤 링크트리 (커피챗, 이력서 검토, 모의면접 등) https://linktr.ee/NomadYun




매거진의 이전글독일 대기업 PM_5년차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