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내 얼굴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사진도, 나와 누군가가 함께 찍힌 사진은 좀처럼 없다.
게다가 몬테카를로에서는 핸드폰을 물에 빠뜨려버렸기 때문에 더 많은 사진들이 흐려졌다.
그러니 나는 글을 쓴다, 당신에게.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당신은 내 다리가 떨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당신에게 말했다. 철학을 좋아하는 남자애야. 말이 돼?
당신은 단칼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된다고, 철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은. 안된다고.
당신의 말에 나는 웃어버렸다. 소파 위로 엎어지며 크게 웃었다. 철학이니 예술이니 ... 그런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그 해 여름 나는 내 눈에 가득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다. 그 애는 내 눈에 아름다웠다.
사랑했던 당신, 당신이 뭘 알겠어? 당신은 아무것도 못 봤잖아. 그 애나 그 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잖아.
당신이 아무도 몰래 나를 어떤 방에 밀어넣었을 때를 기억한다.
다른 모든 친척 어른들 몰래, 친척 아이들도 몰래 - 꼭 나를 숨기는 것처럼.
그 방에서는 따뜻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고, 당신은 곧 나에게 주머니 모양을 한 단것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사랑했던 당신, 나는 당신이 가져다준 그 얼룩처럼 달콤하고 샛노랗던 그것을 몇 년을 생각했는지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이 그때 단칼에 고개를 저어주었을 때 나는 그런 것과 같은 것을 받은 기분이었다. 당신 손에 이끌려 푹푹히 낡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나에게 주는 그것을 전부로 여기고 한 입 다시 한 입 베어물며 그 반짝반짝한 단맛을 느끼는 것. 당신 말대로 철학이니 예술이니 문학이니 ... 하는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 그 애의 아름다움 같은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당신, 이제 당신이 내 입을 막는다.
그 따뜻하고 눅눅한 방으로부터는 이제 몇 해가 지난 뒤이고 나는 당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몇달 전 당신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7시간의 시차를 모르는 것처럼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 17 이라고 뜬 부재중의 빨갛고 작은 알림이 아직 내 눈에 선연하다. 가족이었던 당신, 나는 당신이 두려웠다.
묻고 싶다. 언젠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던 당신의 눈은 무엇으로 인해 그렇게 낮고 차가워졌는지. 나는 사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 습성을 잘 모르는데, 당신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인지.
당신, 당신은 답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나에게 당신은 기이한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에게는 다섯의 부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가족의 형태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 고백한다 ㅡ 당신, 그때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어느 교과서에 실린 현대 소설같이 듣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나의 방식대로 당신이 말한 가족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때에도 ㅡ 당신의 연약한 부분을 이해하는 일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다정의 그리고 사랑의 최선이었다.
왜 나는 이토록 사랑이 어려울까? 아주 빨갛고 매운 떡볶이를 먹으면서 그의 서운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던 나를 돌이켜 본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가깝게 여기는 이들에게 무심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사진을 찍듯이 사랑을 이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작년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사진을 찍었다. 나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스튜디오에 있었다. 물론 그곳에는 우리 여섯 명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어주는 누군가도 함께 있었다.
넓고 하얀 스튜디오.
한 명이 사진에 찍히는 동안 나머지 다섯 명도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우리들끼리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안경을 번갈아 끼듯이 썼다. 누군가는 팔을 죽 늘어뜨렸고, 누군가는 벽에 기대어 앉았고, 누군가는 와락 껴안았다. 우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쉴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하얀 스튜디오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림자의 모양을, 몸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의 팔을, 누군가의 등을, 누군가의 얼굴을.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ㅡ 나의 사랑은 그런 모양이에요.
그래서 당신들이 내게 서운하다고 말하면 당신이 꼭 사진 속에서 걸어나오는 기분인가 보다. 대뜸 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이들이 내가 너무 다정한 말을 안 한다고, 무심하다고, 서운함을 말하면 나는 당황했다. 화가 났다.
슬펐다.
그럼 나는 당신들이 나를 떠나는 것을 상상한다. 죽음처럼 영원한 작별을 상상해본다.
그렇게 내 곁을 떠난 당신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 안에서 그리움을 찾아낸다. 향수를 뿌릴 때 멀리서 향을 뿌리고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찾아내듯이. 그러면 이상하지ㅡ 나는 꼭 시간이 흐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들 주위로 사진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사실 그제야 내 주위에도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아요. 나는 그러고 나서야 꼬리가 내려간 강아지처럼 된다. 나는 그렇게 종종 ㅡ 허공에서 멍하게 설렁거리는 내 꼬리를 찍어 눌러 바닥에 붙여야 하나? 내 사랑은 늘 두려움과 작별이 필요한 사랑인가?
자, 당신.
당신 역시 내 입을 막는다. 그것이 당신에게 하는 말도, 당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닐지라도 - 모두 나에 관한 이야기일지라도. 나는 당신을 떠났다. 나는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는다.
당신, 당신은 한국어로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겠지. 그러니 잘됐다. 큰 키와 짙게 반짝거리는 눈의 당신. 이른 저녁, 그러나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맥주집에서 나를 바라볼 때 당신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려서 나는 이 시시한 비유를 쓰지 않을 수도 없었고,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는 늘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고, 하루는 말했다.
나는 자기 전에 15분 정도 음악을 듣다가 자는데, 네가 어제 추천해준 노래가 혼자 8분을 잡아먹었어.
그때 네가 정말로 잡아먹었다 라는 말을 쓰진 않았겠지 하지만 왜 나는 영어로 된 너의 말을 자꾸 ‘잡아먹었다’ 라고 번역해서 기억할까? 내가 잡아먹은 15분 중의 8분이 기꺼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틀었다가 8분 동안 계속되는 노래에 황당한 헛웃음을 지었을 너를 상상한다.
넌 참 이상하구나.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말이 맞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늘 기꺼웠다.
끓는 주전자의 따뜻함과 날카로운 삐 - 소리를 이야기하는 것. 치기 어린 소설 속에라도 들어와 있는 듯 어떻게 죽을지를 서로 말하는 것. 노래를 고르다 고르다 못해, 차마 가장 좋아하는 노래만 알려주지 못하고 가장 이상한 노래까지 서로에게 건네주는 것. 당신의 앨범에 세 개의 한국어 노래를 주었듯이 나의 앨범에는 아직 세 개의 힌디어 노래가 있다. 구글에 가사를 검색하고 번역해가며 들었다. 당신에게 거기까지는 말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었다. 내가 부다페스트로 떠나기 전, 당신은 10일의 여행은 너무 길다며 네가 나를 버리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말이 돼? 나는 난감하게 웃으면서 그를 타박했고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당신의 품에 안겨 있다. 당신과도 늘, 누구와도 늘 하는 포옹.
당신은 평소보다 조금 길게 나를 포옹한다. 흔들거리는 뿌리처럼 당신의 발이 흔들리고 안겨 있는 나는 그에 맞춰서 천천히 휘청이듯 한다.
봐, 당신.
서운함에 대답하지 못하는 나는 늘 쌀쌀했던 그곳의 흐린 하늘 아래, 당신의 품은 또 기억하고 있어. 당신의 시끄러운 투정에는 난감함을 내놓았으면서 당신의 아쉬움이 가진 따뜻함은 예민하게 느꼈어.
당신은 6월에 다른 나라로 떠났고 나는 제대로 거절하지도, 제대로 작별하지도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마지막으로 만나려다가 쓴 사탕을 삼키듯이 단념하고 말았다.
당신은 나에게 맥주를, 힌디어 노래를, 반짝거리는 눈을, 한국어로 적어준 내 이름을 주었는데 무언가로 보답하지 못해 미안했다. 당신의 눈을 보는 동안 나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너의 눈으로 사랑할 만한 다른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못할 말.
사진은 하얗다.
사진을 찍으려면 우선 찍을 무언가를 하얀 스튜디오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시간을 보낸다
무언가가 느껴질 때까지 ㅡ 그 순간 찍는다.
무언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나는 무언가를 찍으면서 나를 찍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필연히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 이를테면 내 앞에 선 당신의 다정한 눈빛을 나는 좋아했다는 것. 언젠가 당신의 그런 조용한 발걸음 같은 눈빛, 곧은 손가락,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섬세하고 다정히 대하던 당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는 것. 그 순간 찍는다.
주전자는 나의 시 중 하나에 나오는 것. 난생처음 영어로 번역해온 나의 시를 읽은 당신이 터뜨리던 탄성을 기억한다. 날카롭고 시끄러운 주전자의 소리와, 끓는 물의 온도의 따뜻함을 읽어내던 당신.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그런 질문을 하던 당신 앞에서 나는 당신 눈을 보는 데 이상하게도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그 순간 찍는다.
순간마다 계속해서 찍히는 동안, 이곳에는 내가 가득 쌓인다. 과거의 나 들이 찍히고, 쌓이고, 반복된다.
당신,
고백하자면 나는 가끔 재미가 없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수백 번 들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다고 생각해봐요, 그것도 정성스럽게 새로운 단어를 찾아 매번 말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만들어서. 그렇게 어떠한 순간마다 사진을 찍으면 가끔은 나 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진다. 나는 새로운 사진, 새로운 나를 찍으려 찾아 헤매고 그것을 아름다운 것인 줄로 안다. 읽어지려고 태어난다. 쓰여지려고 태어난다.
그러면
이 하얀 스튜디오에는 내가 가득 쌓인다. 당신은 지금 내 스튜디오를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