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네덜란드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몇 번이고 포기했다.
나는 가끔 나를 동물이나 번식하는 미생물처럼 들여다본다. 나는 나를 현미경 아래에 두고 가만히 번식하고 우글 꿈틀하는 모양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기록하고 딱딱히 굳은 얼굴을 쓸어올린다.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D가 언젠가 나에 대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돌아와 나는 한국의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났다. 내 친구들은 모두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다. 오래된 학교의 U, 음악의 H, 사랑의 D, 직선의 M, 현실의 O, 그리고 시 모임의 친구들도-
나 한국에 돌아왔어, 하는 핑계로 한 달 내내 친구들을 만나 목걸이를, 비누를, 반지를, 팔찌를, 와플을 건넸고 나 사실 그게 좋았어
너를 닮은 것을 단박에 찾아내고 혼자 웃으면서 그걸 신문지에 잘 싸고 그걸 또 옷 사이에 넣고 캐리어에 달칵 버클을 채우고 꽁꽁 싸매온 그것을 네 앞에 쏘삭쏘삭 꺼내어 내놓는 것이 좋았어 그리고 네 얼굴 보는 일
나 사실 그게 제일 좋았어
왜 우리는 어른이 아닌데도 ㅡ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는데도 자꾸 어른처럼 행동할까? 언젠가 U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집앞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두고 갈 수는 없나? 생일날, 내가 친구의 자취방에서 하루 자고 가려 한 그 날 U는 우리 집 앞에 찾아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집에 없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 녹을지도 모르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고백했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면서도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케이크가 녹을까봐 발을 동동 구르는 U에게 나도 따라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로 우리 집 호수를 알려주었고, 집에 있던 동생은 U가 걸어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무사히 냉동에 넣어두었다.
U야, 내가 받아본 것 중 너무나 천진하고 달콤한 서프라이즈였어.
나는 사실 그런 게 너무 좋다. 불쑥 두드리는 문 같은 거. 갑자기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무섭다고 오는 덜렁 한 줄의 연락 같은 거. 그런데 나는 능숙한 어른처럼 구느라고 좀처럼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사실은 하나도 그런 게 아니면서 그냥 그런 말들이 살랑살랑 간지러운 꽃처럼 부끄러운 거면서.
그리고 D는 내 '좋다' 는 말을 가장 많이 끌어내주는 친구
D와 만나면 이상하게 서로 소리부터 지르고 시작한다. 큰 소리라기보다는 야아-! 하는 탄성 같은 소리다. 웃음기 가득하고 눈이 활짝 접히는, 풍선이 빵 터져서 알록달록한 것이 웃음처럼 쏟아져내리는 그런 소리. 그리고 식당이든 카페든 앉고 나면 쉴새 없이 쏟아지는 좋음이 있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처음에는 쑥스러운 목소리인데, 거기에다가 D는 자꾸 말한다. 야 나는 너가 그런 게 진짜 좋다고 생각해
D와 만난 날은 아주 덥고 뜨거운 날이었는데, 나는 D를 이끌고 어쩌다 보니 서울의 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 자꾸 미안해지려는데 갑자기 D가 내 손을 이끌고 그 옆에 보이는 꽃집으로 들어갔다. 꽃집은 시원했고, 나무로 된 벽들이 길고 좁았다. 그곳에서 대뜸 D에게서 꽃을 받았다. 보들보들하고 바스락하고 매끈했다. 엷은 분홍빛으로 된 꽃을 고르며 D가 이게 널 닮았어, 라고 말했다.
너는 되게 말랑해 보이면서 차갑게 분석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나는 그게 진짜 좋아.
D야, 나의 차가움을 읽어주는 네가 좋아. 그게 나를 무엇보다도 말랑하게 해.
왜일까?
나는 스스로 현미경 아래로 기어들어간 미생물처럼 무표정한 시간을 많이 보낸다. 네덜란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번에도 그런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나는 차가운 핀셋으로 나를 집어 가능한 투명한 유리에 올려둔다.
왜 나는 이토록 네덜란드에 대해서 쓰는 게 어려울까?
욕망은 너무 어렵다. 내게는 좋아하는 일만큼, 좋다고 말하는 일만큼 어렵다. 욕망을 운명처럼 정의하는 나는 이게 정말 운명인가, 하는 의심을 자꾸 들이민다. 이것저것 실험해본다. 이걸 들이대면 부글거리며 끓던 내가 가라앉아 눈을 감는지, 저걸 들이대면 스르르 지루한 얼굴이 되는지. 그러다 보면 욕망인 줄로 알았던 많은 것들이 벌거벗은 모양을 하고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쓰고자 하는 욕망만은 나는 공포에 질린 어린애가 된 것처럼 그것을 대한다. 나는 쓰고자 하는 욕망만은 차마 만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도 많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눈을 감고 나를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 위치시켜본다. 벽돌로 쌓은 성에는 금빛 시계가 반짝이고 있고 그 아래에는 파랗고 무던한 글씨로 Amsterdam Centraal 이라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 나는 하루는 반짝거리는 눈의 누군가를 만났고, 진저 빛깔의 머리칼과 청록색 눈동자를 마주쳤고, 하루는 조금 붉은 눈가로 열차를 탔었고,
그 모든 순간에 그 a 두 개를 길게 늘여 아아- 바람이 입 안에서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즐겁게 발음해보곤 했다.
센트럴의 기차역에서는 많은 냄새가 난다. 가령 첫날 온통 낯선 이들과 걸어 맥주를 마시러 갔던 기억이 있다. 지하철 안에는 나처럼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아이들이 가득했다.
카메라 파티 타투 담배 가죽 자켓 커다란 키 파리 모로코 ..
수많은 단어들이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동안 나는 익숙하고 은근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있으면 수많은 언어가 들리는데 그 어느 언어도 내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때가 있다. - 실제로도 모두가 영어로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나는 암스테르담 센트럴 역에 내렸다. 그렇게 찾아간 붉은 황소 로고가 매달린 술집에서 나는 베트남에서 온 N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N은 활달하고 밝은 아이였고 나도 그 애와 함께 앉게 된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옆자리에는 벨기에에서 여행을 온 이들이 둘 앉아 있었다. 우리가 하나마나한 피상적인 이야기들을 ㅡ 세상 가장 즐거운 것처럼 웃으며 하는 동안 N은 무엇을 느꼈을까?
나는 내가 제3의 인간이 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여행객도, 이곳의 인간도 아닌 제 3의 인간. 파티의 인간도 고독의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인간. 그게 멀미를 일으켰다.
그날 나는 사과 맥주인지 체리 맥주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과일주를 마셨고 함께 먹은 감자튀김과 하얀색 소스가 기억이 난다.
술집에서는 어딘가 피곤해보이던 N은 술집을 나서자마자 활기를 찾으면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닐래? 하고 나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이들은 베트남, 홍콩 같은 동양 친구들이었는데 이들과 나는 프리마크(Primark), 에토스(Etos) 같은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머리가 욱신 쑤시며 편두통 같이 눈 뒤쪽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하얀 가게들을 기억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의 화장품들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그 애들의 손과 능숙하게 화장한 앳된 얼굴들 -
겨우 거리로 나와 다른 가게로 향하려 할 때 나는 재빨리 빠져나왔다. 미안한데 난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N의 얼굴에는 걱정이 있었고 다른 친구들도 잘 쉬라고 말해주었다. 돌아서서 나란히 걸어가는 네 명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열감이 스치고 지나간 뒤의 맥빠진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 남은 나는 암스테르담 센트럴의 거리 위를 걸으며 그제야 무언가 다른 냄새를 맡고 있었다. 불안정한 두근거림이었다. 너무 불안정하고 너무 낯설어 가히 공포 같은 웃음이 느껴졌다. 그 날, 내 발 아래에는 울퉁불퉁하고 아름다운 색의 벽돌들이 깔려 있었고 이따금씩 트램의 선로가 밟혔다. 내 눈 위에는 케이블카 같은 트램의 줄들이 늘어서 있었고 하늘이 있었다. 눈에 가득 찬 암스테르담의 하늘이었다.
갈매기가 날아다니며 거대한 울음소리를 내고, 하늘은 어느 천장화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릴 때면 아직은 나는 트램이 다가오는 중인지 성당에서 종을 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씩이나 벽돌길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날의 나를 기억한다. 나는 그날 대학에 입학하던 첫날처럼 사람들 틈에서 무신경한 얼굴로 불안정하게 떨고 있었고, 아름다워하고 있었다.
종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거대한 이곳, 하늘에는 천장화가 드리워진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찾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도 ㅡ 사실은 늘 그랬듯이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네덜란드의 몇 초에 불과한 시작의 이야기이다.
왜 나는 이 몇 초 동안의 글을 쓰면서 떨고 있을까?
현미경 바깥의 내 눈은 아마도 말할 것이다. 너는 지금 집 근처의 새까만 카페에 앉아 있지. 오늘 처음 가본 그곳에서 너는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주문하는 것을 깜빡 잊고 카페인이 그대로 든 아주 맛있는 라떼를 거의 다 비웠어. 그러니까 손이 조금씩 떨리는 거야.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쓰려는 공포 같은 욕망을 5일 내내 느끼고 견뎌왔다. 쓰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나는 사랑을 잃을까 공포에 떠는 어린애처럼 어려워한다.
H는 모를 것이다.
나처럼 어느 나라에 다녀온 그 애. H가 그곳에서 느낀 자유를, 그곳을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을 쓴 글을 보고 내가 얼마나 큰 슬픔을 느꼈는지. H와 잠실의 공원에서 유난히 시원하게 부는 여름 바람을 맞으며 서로의 나라를, 네덜란드를 이야기할 때 내가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는지. 네덜란드에 대해 쓰는 순간 나는 네덜란드와 헤어지게 될까봐 두려웠다. 나는 계속해서 네덜란드를 내 주변으로 불러온다. 그곳의 회색빛 물, 빛의 파편 같은 나뭇잎, 말할수록 현미경 아래에서 해체되는 것 같은 네덜란드를. 나는 모든 단어들을 황급히 밀어내고 그저 눈 감고 네덜란드의 숨을 되살린다. 나의 현미경이, 나의 네덜란드나 쓰고자 하는 욕망을 해체시킬까봐 공포스럽다. 내가 사라지는 공포를 느낀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H야, 이미 너에게 말했지만 진심으로 너를 응원해.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하기를 선택하더라도 너와 내가 사랑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음과 글과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방식을, 서로에게 대뜸 보내오는 사진을, 눈치 보지 않는 옷을 입듯이 몸에 흐르는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