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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Jun 07. 2021

완벽주의는 끝났다

모두가 송혜교가 될 순 없잖아?

 





 문장을 시작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망설인다. 요 몇 달간 제대로 된 글을 쓰려다가 몇 번이고 쓰고 지우는 걸 반복해왔다. 남의 마음보다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완벽의 근처도 가지 못하면서 혼자 안달 난, 체력까지 나쁘고 모자란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난 자주, 꽤 아팠다.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회사엔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기 일쑤였으며 친구들을 멀리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이 모든 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운 나쁜 삶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싸움이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 같아 먼저 지쳐버린 나는 죽을 생각도 많이 했다. 예민한 신경이 날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주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난 살아남았고 신경쇠약이 날 망가뜨릴 순 있어도 죽게 하진 못 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어느 정도 죽음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난 듯했다. 내가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살면서 한 번도 자신에게 만족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최악의 내 모습에만 집중해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내도 잠시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아주 작은 실수에도 경악스러워할 만큼 극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피곤할 정도로 스스로에 엄격한 만큼 감정 표현도 풍부하게 하지 못해 친구도 별로 없다. 이런 내 모습이 답답했지만 이것을 설명할 적당한 단어를 그동안 잘 몰랐던 것 같다. 완벽주의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걸 나에게 대입해보지 못하고 남일처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내용을 읽어보면 누가 봐도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아닌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무리 아파도 내 안에서 원인을 캐낼 생각을 왜 못 했던 건지. 이런, 이 순간조차 날 몰아세운다.          






 모두가 나처럼 그런 줄만 알았다. 다들 강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로는 누구라도 무너지고 말 걸. 자기 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은 채로 빡세게 굴리며 살고 있었으니 뭘 하든 금방 번아웃되고 자주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00아, 우리 모두가 송혜교가 될 순 없잖아?”

날 지켜보시면서 선생님은 뭔가 눈치를 채셨던 모양이다. 혼자 빡빡하고 엄격해서, 적당히 융통성 있게 어울리지 않고 겉돌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셨으니 말이다. 완벽주의가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니란 건 이제 물 보듯 뻔하다. 피곤했던 내 31년 인생길이 완벽주의는 비효율적이다는 걸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별개로 ‘내가 완벽주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강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은 많은 걸 이루거나 혼자 지쳐 나가떨어진다는데 슬프지만 아무래도 나는 후자로 보인다. 더 이상 이 친구와 함께 살기엔 졸혼을 고민하는 노년 부부처럼 많이 지쳐있다. 이제 좀 놔주고 스스로도 풀어줄 때가 된 것 같은데, 조금씩 의식해서 노력하다 보면 강박도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물론 완벽하게 벗어나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누그러지는 정도를 기대하는 게 현실적이고 속도 편할 것 같다. 좋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다 던지고 ‘속 편함’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보자. 지금 쓰는 이 브런치 글도 돈 벌려고 빡세게 쓰는 게 아니라 속 편하게 나 만족하자고 쓰는 거다. 물론 읽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숨 좀 편하게 쉬고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아프지 말고 삽시다'가 아니고 '덜 아프고 삽시다'면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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