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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Jul 02. 2021

번데기 알러지

웃기지만 숨 넘어가는 알러지 이야기






 나는 번데기에 알러지 반응을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번데기 알러지도 있다는 걸 들어는 보셨을까. 번데기를 먹으면 위험하다는 건데, 남들이 들으면 푸학하고 웃어버리는 걸 많이 봤다. 하하! 어떻게 번데기 알러지가 있어. 하지만 나에겐 심각한 이야기다. 근처 가정의학과의 의사 선생님은 번데기의 어떤 단백질 성분이 몸에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으니 절대 먹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열감과 가려움인데 가장 심한 건 몸이 부어오르는 증상이다.           






 첫 반응을 보인 스무 살 때 이후로 두 번을 더 겪고서야 이 문제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회를 거듭할수록 그 붓기가 심해져 기도까지 부어올라 숨쉬기가 곤란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알러지가 올라왔을 때에도 항알러지제를 먹고 잠을 자려 했는데, 잠들려 할 때마다 기도가 좁아져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바람에 깬 게 다섯 차례나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심각하다는 걸 알았으면 응급실을 갔어야 했는데 약 하나만 믿고 기다렸던 게 꽤 위험한 선택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부터 내가 번데기 알러지의 소유자라는 걸 인정하며 살게 되었다. 그나마 번데기 알러지여서 다행이다 싶은 건, 번데기가 아니라 우유나 밀가루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공식품을 사면 표지에 알러지 주의가 적혀있는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아닌 게 어디인가 싶다. 하다못해 한철 과일인 복숭아에 알러지라도 있었다면 많이 서운했을 것 같은데. 번데기는 좋아하긴 하지만 상당히 ‘일부러 찾아먹는 음식’ 중 하나라서 피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번데기 알러지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알러지라는 점에서 감사하고 있다.           






 한편, 오늘 번데기 알러지를 떠올리며 엉뚱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만약에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번데기를 먹이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번데기를 먹이고 방에 감금해놓으면 서서히 부어올라 숨이 막혀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부검을 한다면 증거가 다 나와서 범인 되는 사람은 감빵에 가야 하겠다. 이렇게 주변에 사방팔방 내가 번데기 알러지가 있다는 걸 미리 알려둬야 혹시 모를 일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걔 번데기 알러지 있어요.” 라고 누가 증언해 주면 좋겠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정보가 역으로 더 이용당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은 생각인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                          






 살아가면서 알러지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 나 역시 번데기 알러지가 생긴 건 스무 살 때부터였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번데기는 기운 넘치는 초딩 때부터 운동회에서 실컷 먹어온 영양 간식이었다. 그랬던 애호 식품이 이렇게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젠 더 이상 번데기에는 근처도 안 가는 지금도 언제 모를 알러지 반응이 두려워 항알러지제를 가까이 구비해두고 있다. 여행 갈 때도 챙기는 건 물론이고 집안 내 비상약 중 필수품이 되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역시 죽음이 무서운 모양이다. 평소에는 마치 생에 아무 미련 없는 듯한 쿨함으로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해놓고선, 집에 지X텍이 있나 없나 항상 체크하는 소심쟁이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는 번데기 알러지로는 이승을 떠나고 싶지 않다. 그저 내 죽음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뭐 듣기로는 운이 나쁘면 화장실에서 힘주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처럼 허망한 일을 당할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는듯하다. 에휴, 죽은 뒤의 인간사가 다 무슨 소용이람. 생각할수록 이딴 생각이나 하는 나 자신이 답답해진다. 그래도 유주씨를 죽이고 싶다면 번데기는 피해주면 좋겠다. 아무래도 죽어서도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 미리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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