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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Jan 31. 2021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

옛 애인을 향한 사죄





 10년 만에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10년 전엔 카톡이 아니라 문자였는데, 수신차단 문자함에 들어있던 그의 간절한 호소들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그는 모든 걸 다 잊고 결혼을 하고 부지런히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워서 카톡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죄를 하고 싶었다. 그의 진심을 오해했고 충분히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할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한 채 그저 그간의 생활 이야기가 오간 뒤 대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카톡을 내 진심을 전할 적당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유부남이 된 그를 만나 커피를 마시기엔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할까 싶어 꺼려졌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을 사과하려는 나는 대체 무엇일까.    





           

 결코 술을 마시고 취한 채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맨정신으로 지나간 애인들을 생각하는 중이다. 몇 달 전, 난 내가 30년 동안 외면해온 것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알게 된 건, 난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고 하지 않으려 했으며 언제나 회피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때론 화를 내는 방식으로, 또는 잔소리나 구속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오냐오냐 사랑받는 방식 외에는 내게 자유를 박탈하려는 모습으로만 비쳤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나는 분개했고 관계의 깊이를 의심하거나, 심하게는 부숴버리는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매몰차게 뒤돌아서면서 자유를 되찾았다며 기뻐하는 게 내 모습이었다. 난 도망자였고 겁쟁이였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되어버린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오랜 시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아주 가까운 가족의 사랑마저도 끝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어릴 때의 좌절이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난 매우 예민하고 쉽게 상처받고 절망하는 어른이 되어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남아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이제 와서야 겨우 내가 가진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는 것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동안은 문제로조차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면할 수 없었고 다룰 수 없었고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래전 한 애인은 내게 말했다.

“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를 볼 자격이 없어”라고 했다. 그 영화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인데 조제라는 여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당시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의 사랑은 끝나가고 있었고, 그는 또 나를 붙잡음을 반복하다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그의 다그침에 질리고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았었다. 하지만 수많은 말 중 유일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는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언젠가는 유효할 사랑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마음을 사리며 그를 밀어내려고 했던 걸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끊임없이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을 반복하던 그였으니까. 어쨌든 우리의 마음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고, 못했고, 하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멍청하고 서툴렀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잡아주길 바라면서도 밀어냈던 게 나였다. 그런 식으로 나는 여러 사랑을 떠나보내면서 살았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뒤돌아서고 아무렇지 않았던 건 절대 아니다. 충분히 사랑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상처는 받았다. 그 상황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을 뿐이라는 변명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이미 나를 잊어버린 그들에게 지금 와서 구차하게 전하는 것은 때늦은 사죄라서 공허한 울림으로 무시만 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은 미안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어린 사랑을 하지 않기를, 사랑에서 도망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이다. 이젠 아무리 기다려도 그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다. 1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지만 계속 기다릴 것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받을 줄도 몰랐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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