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일을 잘하고 싶었는데 살림을 잘한다니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양치한 뒤, 설거지를 하는 게 루틴이다. 설거지 전후로 잡곡밥을 취사하는 버튼을 누르고 다른 일을 한다.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기도 한다. 반찬이나 국은 오후에 만들고, 필요한 건 주로 가까운 슈퍼에서 장을 본다.
엄마와 통화로 이런저런 얘기에
“넌 살림 잘하니까 시집을 가라.”라고 들었다.
아, 살림 말고 바깥일을 잘하고 싶었는데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김장철엔 외갓집의 김장 일손이 되곤 했다.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외할머니도 김장을 그만두셨지만 외할머니는 나를 여전히 야무진 살림꾼으로 보신다.
“우리 ㅇㅇ이는 살림을 기가 막히게 해. “
하지만 얼마 전엔 볶음요리 하다 실수를 했다. 양배추 물기를 덜 털었더니 기름이 옆얼굴에 튀었는데 그걸 무심하게 왼쪽 손등으로 쓰윽 닦아냈다. 다음날 수포가 생겨 피부과를 갔고 기름이 닿은 네 군데에 2도 화상을 입은 걸 알았다.
큰일 안 난 게 어딘가 싶어 불 쓰는 요리할 때마다 더 조심하고 있다. 어른들의 살림 칭찬이 무색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살림은 매일 꾸준히, 조금씩 한다. 마치 고양이 집사처럼 숨 쉬듯 집을 관리하는 재미로 살다 보면 주변이 깨끗해져,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선순환의 활동인 걸 느낀다(빨래를 개키며). 주변을 케어하는 것을 나 자신을 케어하는 일 중 하나로 보면 정말 모두 소중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