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과 거리두기
오랫동안 사랑했던 뮤지션의 노래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았다. 예전엔 어딘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었던 노래가 다시 들었을 땐, 공허하고 위태롭고 학대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이런 위험한 느낌의 노래였다고? 나는 그의 음악에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곡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고 공감해 준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더 깊은 혼란의 늪에 머물게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만, 곡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그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내가 변했을 뿐이다.
그간 나는 감정을 느끼되 그것과 거리두기를 하는 연습을 하고 지냈다. 타인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봤었다. 그리고 감정에 몸이 반응하기 직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내 반응의 방향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 몸이 화에 반응하기 전, 감정과 반응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거기서 판단을 한다, 이게 즉시 화를 낸다고 내게 이득이 되는가, 다른 상황 해석과 반응은 선택할 수 없는가. 해보니 그건 가능한 일이었다. 자동반응을 수동반응으로 바꾼 것이었다. 끌려다녔던 내게도 바로 선택권이란 게 있었던 걸 알았다. 핵심은 감정을 계속 억누르지 않고 꾹 참다가 밖으로도 폭발하지 않고, 살며시 김 빼듯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매일 집안 가사를 모두 짊어지는 생활이 때때로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거 왜 혼자 다해야 해? 하고 화가 난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비집고 들어가서 판단할 때, 이거 사실은 내가 다 책임질 필요는 없잖아? 하고 상황은 크게 바꾸지 못해도 표현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주말, 같이 사는 오빠에게 “설거지 좀 해. “, ”음식쓰레기 버리고 와라. “라고 가볍게 털어놓듯 말했다. 매일 일에 지친 오빠는 ”미안하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내일 할게. “라고 말했지만, 나는 현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도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건강한 방식으로 밖으로도 표현해 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감정을 억누르는 게 습관이 되어 겉으로 표현을 드러내는 게 서툴렀던 나에게 이런 모습은 굉장히 큰 변화였다.
이처럼 감정과 씨름하거나 회피하거나 괴롭다고 신체반응으로 대신 맞아줄 필요 없이, 감정을 느끼고 살짝 거리를 둔 다음 순간에 표현 방식을 건강한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뿐이란 걸 안 것이다.
어쩌면 그런 나의 새로운 감정 처리 시스템이 앞서 말한 뮤지션의 노래에도 다르게 감흥하고 반응하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내가 바뀌어 가듯 이제는 나의 음악 취향도 함께 바뀌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