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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Sep 13. 2021

강박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삽니다

비틀린 정서로 자란다는 것






 난 정서적으로 비틀린 채 자라났다. 그게 내 잘못일까? 잘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는 그다지 커다란 사건이란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틀린 인간이 되었다. 단순히 유전자를 잘못 받은 것일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백날 천날 울부짖어 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흔적 없이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이 남긴 상처뿐이었다. 내 안의 깊은 인지왜곡들은 삶의 모든 길에서 스크래치를 냈다. 사람들을 오해하고 경멸했으며 끝내는 멀리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또한 사람들도 나를 오해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갈 뿐이었다.        





  

 일생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뭔가가 틀어진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나는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인지왜곡을 하나씩 풀어나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끝없는 후회와 절망을 느낀다.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이 짓거리가 끝날 것인가.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마저 믿지 않는다.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 이렇게 공포와 편집과 강박이 내 안에 공존한다.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내 정서를 비틀어버린 요인들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인데 그 순간들이 지옥 같다면 어떨까?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나는 그런 견딜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매일 보는 동급생들, 선생님들을 보며 난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한때는 입을 닫고 없는 사람처럼 있을 때도 있었다. 그것들이 선택적함구증 같은 불안 증상이었다는 걸 안 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치료도 받지 않고 생몸뚱이로 버티느라 아주 고생했고 공부도 사실 뒷전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야 간신히 웃고 다녔다. 웃으니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나는 밝고 명랑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범불안장애 증상이 찾아왔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놀라고 일상의 모든 것이 거슬리고 불안했으며 견딜  없을 만큼 예민해졌다. 그걸  술과 의지로 참아냈더니 나중엔 신경쇠약에 걸려버렸고, 중요한 취업 시기에  심각한 예민함과 건강 문제로 퇴사를 반복하게 됐다. 그리고 그제야 병원을 가서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사회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고 편집성 성격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도 의심증상으로 나왔다.(얼마전엔 병원을 옮겼더니 강박성 성격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당시 나는 강박사고와 자살사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후 정말로 죽지 못해 산 세월이 5년이다. 그동안 속절없이 나이만 먹고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한 채로 루저의 길을 밟고 있었다. 나는 어떤 노력도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는 노력이란 단어가 붙은 것들을 멀리했다. 너무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전체적인 안목과 판단력도 개차반 수준이다.          






난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적도 없고 학대 당한 적도 없다. 사기를 당하거나 강간을 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생긴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사람들이 나를 떠나거나 내가 사람들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 일상생활, 노력을 하는 것, 일을 시작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버겁다.        





   

 비틀린 정서로는 학교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을 이어가기가 너무 어렵다. 이것저것 도전해보아도 이제는 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다시 시작한다 해도 잘 해낼 자신도 없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끝없는 후회만 반복될 뿐이다. ‘그때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만약 그때 치료를 제대로 받았더라면 난 이 정도까지 망가져 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동안 6년간의 치료가 있었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확실한 건 이렇게 비틀린 정서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악화되는 걸 지켜보면서 견디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개인의 안정된 정서마저 태어날 때부터 잘 타고 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뒤틀린 정서를 바로잡는 것. 인지왜곡을 고치는 것.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관계에는 얽매이지 않는 것. 지난 기회를 놓친 걸 후회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운이 나쁘면 죽기 직전까지도 못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약간이라도 노력은 계속 하는 수밖에 없겠지.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 같아서다. 어쨌든 간에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나는 다시 뭔가를 할 수 있을 테니 이건 앞으로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솔직히 이젠 그냥 죽을 수 있다면 속이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차마 죽지도 못하는 나 자신마저 싫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매우 예민하고 정서가 비틀린 채로 자란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내 팔자를 꼰 걸까. 운이 나빠서 잘못 타고난 걸까. 원인이 뭐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이걸 일생에 걸쳐서라도 내 안의 잘못된 허상들을 깨고 고쳐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엔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이렇게 오늘도 끝모르는 고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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