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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Sep 10. 2021

생각의 금기를 깨는 것

강박사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난 언제나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나간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기분 나빴던 기억을 떠올리고 화를 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단지 우울증의 증상일 뿐이었다. 우울증이란 생각을 지배하고 불쾌한 감각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리고 나 자신을 전면적으로 잘못되었다며 뼛속까지 부정하면서 끝없는 고통으로 빠뜨린다. 그 안에서 지독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침내는 육체의 시스템마저 흔들고 몸이 아프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여러 신경증에 번갈아가며 시달렸다. 10대와 20대를 정신적인 문제와 싸우느라 해야 할 일도 뒷전으로 하고는 혼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댔다.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원을 안 간 대신에 난 교회를 갔고 점집을 갔고 사이비종교에 끌려들어 갈 뻔하기도 했다. 피 같은 시간과 돈이 사라져갔다. 뭔가 일을 하나씩 겪을수록 점점 더 피폐해졌고 마침내는 눈물을 흘리며 병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 후, 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재작년, 내가 함부로 단약을 했을 때는 새로운 증상이 더 추가됐다. 바로 폭력적인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강박이었다. 누군가를 가해하는 상상, 죽이는 상상, 죽을 만큼 폭행하는 상상 같은 것이었다. 이걸로 결국 서울에 있는 마지막 상급종합병원까지 갔다. 비장한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거기서 선생님은 의외로 내 병명을 가볍게 내렸다.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때리고 죽여서 감방에 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도 선생님은 희미한 미소로 무덤덤하게 F 코드를 찍었다. 먹던 약을 바꿨고 그 후로도 한동안 강박적인 생각에 시달려서 갈 때마다 호소를 해댔다.     



 

 “선생님, 자꾸 나쁜 생각을 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말없이 타자를 쳤고 원한다면 약을 증량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 끝없는 강박사고에서 벗어나는 것, 그 방법이 너무나도 궁금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종이에 강박사고와 그때 어떻게 대응하여 생각하는지를 적어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 달 반이 흘렀다.                







 나의 강박사고는 불특정의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는 정말로 한심하게도, 왜 당신들만 행복하냐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로 행복하지 않은 인간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마침내 이렇게 대응하기로 했다.        



   

 “다들 죽지 못해 억지로 살고 힘들어하고 있다. 어떤 누군가는 오히려 날 부러워할 수 있다. 어차피 나는 아무도 죽일 수 없고, 혹시나 죽인다면 내 자유는 끝난다. 깜방은 가기 싫잖아? 이제 그만 생각하고 다른 일 하자”     





 이렇게 나름대로의 강박사고 대응법을 마련하여 선생님을 다시 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칭찬을 받아버렸다. 선생님은 혹시 어디서 베껴온 것이 아니냐며, 이건 교과서에 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셨다. 즉, 정신과의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강박사고를 잘 중화시킨 결과물이라는 말씀이었다.     





      

이때 드디어, 뭔가를 알아챘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나를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내가 그 생각들에 권력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난 대답했다.

“선생님,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네요? 아무것도 아닌 거잖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아요.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생각이죠.”          






 그렇게 나는 단순히 하나의 사고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지 결코 미친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강박사고에 대응할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생각에서 ‘금기’라는 영역을 없애버리자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사고의 금기를 깨버려도 나에게는 물리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스쳐가는 생각으로 치부하고 다시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또, 생각에서 ‘도덕성’의 영역을 지우자고 생각했다.

그게 나쁘다고 정하자면 나쁜 것이 되지만 생각이란 건 개인의 자유다. 만약 생각이 곧 도덕성이라면 소설가들은 이미 중범죄자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기다렸다는 듯 온갖 종류의 폭력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강박은 강박이 아니었다. 수많은 공격에도 이번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고 싶다고 하더라도. 아주 더 크리피해도 괜찮았다.          





 마침내 내가 이번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걸 알린다. 병원에선 한 번 더 멀리 연장된 다음 상담 날짜를 받아왔다. 이젠 더 이상 자주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강박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단지 멀어질 뿐이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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