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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Aug 29. 2021

이 정도면 평탄한 삶이지

최악에는 바닥이 없거든







 요새 무언가 공부하거나 일하는 게 싫다. 조금 살만하면 또 찾아오는 나의 불청객인 우울증인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떤 것에도 딱히 흥미가 없다. 이유 없이 울적할 때가 많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역시 우울증이 맞는 것 같다. 업앤다운이 심한 생활이 이제는 익숙할 만도 한데 30대가 되어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싫다.





         

 집에서 사니 배가 불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지 않아도 꼭 이랬을 것만 같다. 난 애초에 의욕이란 게 없는 인간인가. 지독한 신경증에 오래도록 잡아먹힌 상태로 살다 보니 정신적으로 무척 가난해져있다. 아주 무기력이 몸에 배어서 남들이 차를 사든 집을 사든 그사세구나 하면서 외면하는 게 일상이다. 이제는 남들과 비교하는 것도 저절로 그만하게 된다. 아무리 열등감이 들어도 그것이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해탈을 하는가 보다.        





  

 이렇게 정신적 문제와 쌈박질을 하고 버티고 하더니 드디어 맷집이 커진 것 같다. 몇 년간 계속 삶이 엉망인 이유와 해결점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난 그저 사회부적응한 초예민인간이고 신경증 환자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글을 읽게 됐다. 그들을 보며 안도한다. 그리고 혼잣말로 말한다.

“나 정도면 평탄한 삶이지.”     





          

 난 우리 집안의 아픈 손가락으로 살아왔다. 겉으론 엄청 멀쩡해 보이는데 안 멀쩡하게 자랐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적도 없고 어디서 성폭행을 당한 적도 없다. 집단 린치를 당한 적도 없다. 목돈을 잃거나 사기도 안 당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망가져버렸다. 결국 내가 잘못한 걸까? 난 왜 끝없이 우울하고 불안한 걸까? 또 그냥 운이 나빴나 보다 하고 치우기엔 앞으로 할 게 산더미처럼 많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네가 집안의 액땜을 한 것 같다고. 우리집은 생각보다 잘 풀렸고 어떤 이들은 그걸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고 넘어가기엔 나는 너무 오래 아프다. 꾸역꾸역 울면서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사회생활도 오래 못 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사며 사람 구실을 못 하는 사람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헛바람 안 들어서 돈을 펑펑 쓰지 않는 게 장점으로, 어쩌면 내 기준에선 당연해야 할 기본적인 소양들이 내 장점이 되어 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만큼 기대치는 바닥을 친다는 소리다. 속은 편한데 또 편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게 내 그릇인 걸 어쩌나 싶다. 기본만 하는 인간. 일은 때려치우더라도 큰 사고는 안 치고 어디 가서 애라도 낳아오진 않는, 해가 적은 잉여인간이다.






 친한 친구는 나를 히키코모리라고 불렀다. 그 말은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았다. 어딘가 수치스럽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나는 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또 불안이 도졌고 나갈 생각을 하면 뭔가 위험한 일과 마주치는 상상이 강박적으로 두뇌를 치고 들어온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인간이 나다. 이럴 때마다 점점 더 불안하고 우울해져간다.          






 그래도, 내 인생은 제자리걸음이었으나 최악은 아니었다. 멀리 볼수록 최악의 기준은 더 높아진다는 걸 알았다. 빚이 있거나 아주 큰 병에 걸렸거나 사지를 잃거나 조실부모하거나 뺑소니를 당했거나 억울한 누명을 썼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보면 최악은 파면 팔수록 더한 최악이 나오는 법이라 끝이 없다. 그래서 최악은 아닌 것이다. 그냥 일 오래 못 하는 신경증 환자에 불과하다. 물론 그로 인해 미래가 안 보이는 건 사실이다. 난 커리어도 없고 애인도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까마득하다. 아무래도 결혼은 못 할 것 같다. 난 삶에서 주어지는 퀘스트를 못 깨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도 내가 해낼 거란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냥 비우고 산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마다 유튜브로 다양한 문제를 갖고 사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또 나처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라도 하면 나는 평범함이라는 기준에 나를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래 이 정도면 평탄한 삶인 거지하는 결론으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사는 건 원래 고행이라고 했으니 지금 나는 내적으로 수행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을 너무 쉽게 살까봐 미리 염려하여 설치해둔 트랩이라고 여겨본다. 그래, 이 정도면 잘 먹고 잘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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