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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Dec 24. 2021

예술병은 좋은 핑계거리였다

예술병 걸린 자의 후회 스토리!






 여러 번의 퇴사 끝에 재취업을 포기했던 20대 중반, 나는 가소롭게도 주제도 모르고 소설가가 되는 꿈을 꿨다. 철없던 10대 때의 꿈이 현실을 알만한 20대에도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나는 퇴사의 경험을 마치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계시 같은 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던 게, 정신과를 다니면서도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술병에 걸렸다.   





       

 예술병에 걸릴 수 있었던 건 불행히도 나에게는 아주아주 티끌만 한 재능과 관심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 속했고, 사람은 미워해도 사람이 쓴 책은 사랑했으며, 논술학원에 다닐 만큼 글을 쓰거나 책 읽기 스킬을 연마하는 데는 관심이 많았다. 또 아무도 관심이라곤 하나 없는 독서감상문 대회에서 상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서 온갖 오타쿠들이 모여 있다는 도서부원이기도 했는데 20대가 되어서도 술자리에서 헤까닥 취하고선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렇다면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은 있었나 물으신다면?    





      

 20대 중반, 정서불안이 있는 나 백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참하게도 난 내가 작품을 보란 듯이 떡하니 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한동안 작은 노트를 손에 잡고 매일 글을 써 내려갔다. 단 몇 줄만이라도 쓸 수 있으면 그나마 잘 쓴 하루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몇 장 써 내려가더라도 다음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도저히 결말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결론이 나버릴 지경이었다. 나름대로는 작품을 만들고 등단을 해서 상을 타먹고 살아야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으나 펜대를 잡은 나는 말 그대로 문장을 만드는데 약간의 소질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걸 인정하기까지는 꼬박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렇게 어떻게 보든 간에 철저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난 예술병 걸려 사는 인간 중 하나였다.   





       

 예술병에 심취한 채 오래된 신경증에 여전히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리며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그저 퇴사한 취준생이었고, 일 오래 못하는 알바생이었고, 제대로 공부를 하긴 하는지 모를 9급 공무원 수험생이었다. 또 주변에서는 쟤는 돈은 안 버는데 대체 뭘로 먹고 사는지 모를 수수께끼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 수수께끼의 답은 그냥 신경증이 심해서 사회 적응이 안 되니까 돈은 거의 못 벌고 본가에서 조용히 밥 얻어먹고 재워줘서 살아있는 거였다. 아주 잠깐 일탈이자 집안 내부의 압력으로 인해 독립을 한 적도 있지만 2년도 채 가지 못했다. 아, 떠올리면 서글프다. 그런데 이 예술병을 어떻게 알아챘느냐?   





            

 바로 현대 만물사전이자 지도가 되어가는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하나 보다가 알았다. 인생 망치는 테크트리 비슷한 제목의 영상에서 ‘예술병’이란 게 나왔기 때문이다. 얄팍하고 알량한 재주 믿고 예술 한다고 깝치면서 시간 날리고 결과물은 하나도 못 남기는 인간을 예술병 걸린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보면서 ‘아니 XX, 이거 옛날 내 모습이잖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스스로 그럴만한 능력자가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은 상태지만, 과거의 나는 확실히 정신병이라는 음식에 예술병이라는 조미료를 아낌없이 뿌려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안에 파묻혀살던 시절, 과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란 걸 할 수 있긴 했던 걸까.  





             

 돌이켜보면 멘탈 문제로 몇 년을 사회 진출에서 발이 걸려 넘어져 버리니, B 플랜이자 도피처로써 글쓰기를 택했던 것 같다. 뭐라도 하는 척을 해야겠다는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가짜 9급 공무원 수험생처럼 언제 될지 모르는 하늘의 별 따기를 하면서, 그것도 별로 의욕과 열망도 없이 시간을 때운 것이다.





 뭐, 그동안 딴짓 덕분에 시간도 많이 흐르고 신경증 치료가 많이 진척되었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살만해진 건 사실이다. 근데 그게 5년, 6년이나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젊은 시절을 아프면서 보낼 걸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그전에 심각하게 아파서 입원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걸 싶다. 정신이 돌아온 현재의 난 31살, 무경력 백수. 뭘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만성 신경증 환자에게 보통의 삶이란 사지 멀쩡한 것 이상은 사치인가.               






 인생 나락행 테크트리 중 하나라는 예술병에 걸렸던 난 보기 좋게 나이만 먹었고, 한심하게도 그 긴 시간 동안 현실적인 진로조차 찾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진로상담을 야매로 다닌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다. 한 점집에서는 신의 바람이 불어서 세상에 설자리가 없고 지 밥그릇도 못 챙기는 헛똑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주집에서는 직장운이 하나도 없으니 포기하고 시집이나 잘 가면 다행이라는 소리를 하더라. 참나, 이딴 기운이 쭉쭉 빠지는 말들을 들었더니 없던 힘도 다 빠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한때는 커리어 우먼이 꿈이었음에도 솔직히 이젠 그 어떤 직업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에서 돈 안 쓰고 조용히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임을 깨우쳤고 지금 당장은 배가 불러서다. 그렇다고 금수저는 아니라 죽을 때까지 놀 수는 없다. 언젠가 결정을 하긴 해야 한다. 노는 게 가장 적성에 맞는 난 이제 뭘 해야 할까?... 계속 놀기? 로또 당첨? 또 퇴사할지 모를 취업? 창업? 취집? 오늘은 예술병에서 출발해서 편두통으로 도착했다. 끝이 흐지부지한 것도 딱 내 인생 같은데? 에구 이러다 또 아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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