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씨 Dec 22. 2021

인생 롱런에 번아웃은 독

적당히 살아야 오래 간다








 얼마  지나간 세월을 떠올리다가 어떤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내가 뭔가를 굉장히 열심히  후엔  멘탈이 불안정해지고 심할 때는 피해 망상까지 겪었다는 것이다. , 그동안 번아웃을 반복할수록 더욱더 정신적으로 망가졌다. 찾아보니 강박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번아웃이 올만큼 공부나 일에 매진하기 쉽다는데 역시나 나도 그랬다. 그게 아쉽게도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 확실히 공부하던 학생 때였다. 일은 몸과 정신이 아프다는 핑계로 매번 때려쳐버렸으니 번아웃을 제대로 겪지도 못했다. 때는 중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지역의 명문고(?)에 들어가겠다는 각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것은 잘못이 아닌데 문제는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는 것이었다. 전교 60등을 간신히 하면서 마치 전교 1, 2등을 다투는 것처럼 긴장을 심하게 했고, 점점 지쳐버리자 학교에서 과호흡이 터지고 우울증과 피해 망상이 왔다. 그게 멘탈이 터진 거란 걸 알게 된 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고 당시엔 감정 조절이 안 되니 너무나 괴로울 뿐이었다. 스스로에 압박을 해대는 동시에 부반장까지 맡았으니 부담은 배가 되었다.





 그 후, 학교에서 나는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공부도 포기하듯이 뒷전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사춘기로, 친구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애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고 모두가 날 혐오하고 있다는 피해 망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었다. 그렇게 학교 부적응이라는 불행 속에 말려들어갔다.    





      

  10대를 간신히 살아는 내어, 대학에 입학했지만 우울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어떻게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고 장학금을 받겠다는 포부를 다지게 됐다. 결국 오버를 떨면서 학교 성적관리뿐만 아니라 외국어 멘토링까지 들어가면서 밤낮으로 내내 공부를 해댔다. 그렇게 해서 높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주변 사람들의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또 다시 번아웃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번아웃이 오자 또 합리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나는 성격이 전혀 맞지 않는 남자와 도피하듯 연애를 시작했고 그 시간들은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지옥을 끝내지 못했던 건 번아웃으로 인해 마음이 너무 약해져서 그에게 크게 의지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심해졌고 비웃음에 대한 피해 망상이 반복되어 도피하듯 학교를 휴학하고 말았다(아직 피해 망상임을 알아차리지 못함). 이때가 골든타임이라 치료를 잘 받았더라면 내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하지만, 역시나 병원을 거의 안 갔다.      





       

 똑같은 상태로 복학 후, 나는 굉장히 불안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을 안고 다시 공부를 했다. 취업을 향해 달려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인과의 이별까지 감수하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이미 알코올과 담배에 의지한 상태였고 나는 모든 걸 약한 의지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바쁘게 살면서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역시나, 인생은 맘대로 되질 않았다.





 취업이 잘 되지 않았고 되어도 금세 온갖 변명을 붙이면서 퇴사했다. 정신은 불안정했고 언제나 초조한 상태다보니 이제는 안 하던 짓을 다 하게 되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교회를 다니고 점집을 다니고 거기다 사이비종교까지 들어갔다가 운 좋게 주변에서 눈치채줘서 빠르게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취준에도 사람에게도 인생살이에도 지쳐버리는 바람에 번아웃이 왔다. 우울, 불안은 물론이고 이제는 내 삶 모든 것에 강박적이 되었다. 강박적으로 취준을 하고 강박적으로 취미생활을 하고 또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다.





  20대 동안 서서히 정신과 함께 몸도 무너졌다. 극심한 예민성, 두통, 탈모, 오한, 면역력저하, 과민성대장, 과민성방광, 갑상선수치저하, 식욕저하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정신이 만드는 스트레스를 몸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이런 건 일생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울면서 정신과에 갔다. 이 정도로 참았던 난 참 지독한 인간이다. 그렇게 시작해 5-6년에 걸쳐 오랜 치료를 받게 되었다(피해망상이 있는 건 치료시작으로부터 5년 뒤에야 겨우 인정함).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번아웃이 찾아온 건 스스로의 잠재 능력을 너무 높게 평가했던 것도 있다. 이상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던 욕심과 너무 높은 목표치는 어떤 결과마저도 좌절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난 너무나 이상주의자고 완벽주의자였다. 인생은 길다면 긴데 힘을 과도하게 주어 한 번에 다 써버리면 그 뒤론 어떻게 살려고 그랬던 걸까. 결국엔 병원에서 강박성 성격장애를 진단받고 나서야 겨우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로봇처럼 조종 가능하다고 믿었던 게 분명하다. 인간은 감정이 있는 동물이고 휴식도 필요하고 타인과의 교류도 중요한데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도 솔직히 아쉽다. 강박이 너무 병적으로만 가지 않았어도, 우울과 불안이 극도로 발전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난 어쩌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극단적으로 보자면 망하거나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내 상황은 전자다.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된 건, 나는 앞으로 절대로 번아웃이 되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공부든 먹고살기 위한 일이든 간에 번아웃이 오면 또 모든 게 망가질 테니 그러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할 것이다. 이게 과연 조절이 가능한 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요새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게을러졌고 먹고 자고 유튜브 보는 잉여 생활을 반복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시 뭔가 일에 도전하여 그 부분을 적절히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 할 타임인 것 같은데 생활이 너무 편해서 하기가 싫다. 진짜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져 있다. 대충 지금까지의 인생은 망했지만 희한하게도 부모님 덕에 그럭저럭 잘 먹고 잘 사는 아이러니를 펼치고 있다. 어쨌든 이제부턴 번아웃을 피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나는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쉴 만큼 쉬었으니 슬슬 내가 정한 막차에 오를 때가 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단약하면 생기는 일, 함부로 약 끊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