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씨 Nov 17. 2021

정신과 단약하면 생기는 일, 함부로 약 끊으면?

지옥이 뭔지 알고 싶나요






       

 지금부터 정신과 약을 3년 넘게 지속적으로 복용하다가 함부로 단약을 했을 때 생겼던 일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나는 지난 브런치 글에서도 밝혔듯이 사회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은 적이 있으며 새로 옮긴 병원에서는 강박성 성격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으며 본격적으로 집단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건 13살 때부터였다. 견디고 견디다 18살 때 처음으로 약을 먹었는데 금방 좋아지는 듯하여 몇 달 만에 금방 단약을 했고 그 후로도 수많은 증상을 겪었다. 술과 의지로 견뎌내면 언젠가 끝나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며 계속 정서불안을 안고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20대 중반 취업 시기와 함께 일상생활이 안 될 만큼 건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꾸준히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3년간의 약물치료로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지자 이제 다 나았다며 스스로 단약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약은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먹고 일상 유지나 되면 다행인 것이었다. 그렇게 무지로 인해 단약한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점차 예민해졌다. 당시 서비스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상대할 때 모든 것이 거슬려 보였다. 타인의 말투나 행동 그 모든 것이 보기가 싫고 견디기 힘들어졌다. 일은 알바였으니 항상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자 숨이 답답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건 나중에 알았지만 공황발작이었다.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모든 것에 짜증이 났다. 손님을 때리고 죽이고 싶어지는 상상까지 들 정도였다. 이젠 차라리 굶어죽자는 생각이 들었고 약간의 트러블과 함께 일을 관뒀다.  





    

 일을 그만두자 혼자만의 시간이 늘었다.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 고정 생활비는 계속 나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규칙적이었던 일상생활은 다시 망가지고 있었다. 폰을 만지면서 하루가 다 갔고 수면시간은 불규칙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여러 증상이 재발했다. 이유 없는 초조함과 불안, 예민이 일상을 지배했고 식욕이 떨어져 밥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는 옆 건물의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까지 고주파처럼 들려올 만큼 청각이 민감해졌고 뭔가 냄새를 맡는 것도 불쾌해졌다. 거기다 이제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되었다. 머릿속이 뿌옇게 되듯이 생각이 느려지고 사소한 실수가 많아졌다. 또 밖이라도 자주 나갈 수 없는 건 사람을 마주치는 게 공포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사회 공포가 도진 모양이었다.     






 상황이 벌어질 만큼 다 벌어졌고, 우선은 잠을 자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은 수면제를 처방해 줬다. 하지만 결국엔 그거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또 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증상이 재발한 것 같다며 한동안 약 먹고 숨만 쉬라고 하셨다. 그 후 몇 달간 죽은 듯이 견뎠다. 약은 맞지 않아 매일이 피곤하기만 하고 멍했다. 증상은 조금도 잡히지 않았다. 떨어져 살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불안해했고 결국 병원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치료를 재시작한 뒤로도 증상이 더해지고 악화되면서 불특정의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 때리고 싶다는 강박사고에 파묻히고 있었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의식에서 걸러지지 않았고 불안에 불안이 더해지면서 살아있는 게 너무나도 지옥 같았다. 이렇게 살 바엔 그냥 죽는 게 해방이라는 자살사고도 끝없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이미 내가 죽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을 옮기는 걸로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병원을 옮기고 나자 진단명과 약이 바뀌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약을 먹으며 시간이 흘렀고 조금씩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불안은 가라앉고 잠도 잘 잘 수 있게 되었으며 몸무게도 늘었다. 그리고 밖에 나갈 때도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불안이 사라지게 되었다. 드디어 한숨을 돌릴 수 있을 만큼 나아졌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정신과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 선생님은 줄곧 신신당부하셨다. 아무리 나아져도 약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그 말씀은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재발과 악화를 경험하면서 그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맞는 약을 찾았으므로 그나마 숨이나 편히 쉬고 살 수 있으면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비, 약값이야 내가 느끼지 않아도 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고혈압이나 당뇨로 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보기로 했다. 친한 친구는 그냥 영양제를 먹는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재발 전, 약을 먹었던 기간에는 내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가진 병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집스러운지 증상들이 내 삶을 이렇게 밑바닥으로 내리꽂기까지도 그랬던 거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할 때가 온 게 확실하다. 이 핸디캡과 한계 속에서라도 난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이렇게 내 아픔을 드러내면서 장문의 글을 쓰는 이유는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들에게 당부를 하고 싶어서다. 절대 의사의 동의 없이 함부로 단약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가벼운 우울증이라면 모를까 오랜 세월 누적된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라면 꼭 기억해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쉽게 단약을 하면 곧 지옥을 맛본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다. 단약 후 1년 후 재발할 확률이 70-80%란다. 약만 잘 맞는다면 그에 따른 약간의 부작용에 비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의 가치는 무한정 크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있다면 정신과 조기치료를 하지 않은 것과 단약을 한 것이다. 부디, 어떻게든, 모두들 살아있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만약이란 건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