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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Nov 14. 2021

만약이란 건 없어

내게 정신병이 없는 삶은 없었다


       






 요즘은 컨디션이 대체로 맑음. 올해 초부터 서울 종합병원에서 약을 지어먹자 브레인 포그(집중력 저하와 사고가 느려지는 현상) 없어졌고 자살사고가 흐려졌다. 죽고 싶지 않은 기분이란  아주 오랜만에 느끼고 있다. 이렇게 나에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 대체  년이 걸린 걸까. 가끔은 이런 정신병이 없었다면  삶은 얼마나 윤택했을지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지나간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 그것은 로또 1등이 됐다면 하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내게 정신병이 없는 삶이란 었다.





  

 얼마 전, 병원 선생님께서 내게 요새도 글을 쓰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취미로 글을 쓴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섬세한 선생님은 그런 정보도 환자 기록에 적어두신 모양이었다. 브레인 포그와 자살사고, 강박사고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요즘, 나는 글을 잘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고 억울한 마음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건 내게 표현하기 서툰 감정들을 질서 있게 늘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글을 쓰면 조금 정리가 되었고, 부정적인 감정은 해소까진 아니지만 마음 밖으로 밀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신기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고 하셨다. 다른 환자 중에 예술 계통에 일하는 분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서부터 작업할 소스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능력을 잃었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며, 나에게도 치료가 그와 마찬가지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일종의 글 쓰는 창작을 하려고 애썼던 나도 글을 자주 쓰지 않게 된 것이니 그 말씀이 맞는 걸지도 모른다. 창작에는 고통이 함께 해야 하는 모양이라고 덧붙이시며 참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하신 점이 인상 깊었다.      





  어쩌면 정신질환이 없었다면 나는 글 쓰는 일에는 흥미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요동치는 감정 기복이 없었다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무난하게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그것은 내게 현실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나간 인생에 만약은 없으니 이왕 시작한 거 글을 좀 더 열심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상태가 좋아질수록 의욕은 잃게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글을 쓰면 머릿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완전히 손에서 놓진 않고 싶다. 선생님도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마음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으니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오늘도 타자를 두드리게 된 건 갑자기 마음이 싱숭생숭 해서였다. 옛날 생각이 떠올라 후회를 하고 인생이 잘 풀린 친구들을 샘내다가 괴로워지려 하고 있었다. 강박사고와 우울증 증상인 것 같다. 이렇듯 완화는 있지만 완치는 없다는 정신과 질환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여전히 그 혼란의 씨앗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것이 다시 조금 싹트려고 하자 바로 노트북을 연 것이다. 13살부터 시작된 이 문제들은 언제까지고 나를 완전히 떠나지 않을 테고, 계속 함께 가야한다면 약을 끊지 않고 병증을 다 인정하며 내려놓는 방법 말곤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의 후회와 미련까지 내려놓을수록 얻을 것이다. 다시 새출발할 수 있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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