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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Sep 26. 2021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희미한 자아의 경계







 시작부터 또 병원 이야기부터 꺼내서 좀 그렇다. 나는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흐려서,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망을 보느라 힘든 거라고. 자아 형성이라면 청소년기에 다 끝나야 하는 문제 아니었나? 아니란다. 자아가 세상과의 경계선을 제대로 긋지 못한 채 자라서 증상이 자꾸 생겨나는 것이다. 자아가 확고하면 주변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지켜낼 수 있는데 무방비로 처맞고 끝없이 흔들려버리는 게 문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우스운 소리지만 병원에서도 직접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게 혼란스러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아가 불분명하다고 나와있었다. 역시 진단이 틀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뭘 할지, 뭐가 잘 어울리는지 항상 헷갈렸다. 막연히 회사에 다니려 했는데 맞지 않아 몇 년을 날리고 프리랜서의 길에 들어섰다. 또 긴 머리를 자주 했지만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고 결국 단발을 해버렸다. 오래전엔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다정한 애인을 만났지만 주변의 만류로 이별했는데 솔직히 후회하고 있다. 이렇게 난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니까 주변 말에 흔들리거나, X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지팔지꼰 타입이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일에 시작부터 주저하는 버릇이 생겼다.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괜히 에너지만 낭비할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내 판단이 옳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모든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줏대 없이 흔들리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뭘 해도 안 될 것만 같아 계획을 세웠다가도 무너뜨리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이  됐다. 아마 앞으로도  모를  같기도 하다. 그저 무너진 자아를 지금 와서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나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어떻게 하면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을  있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주저하지 않고 확실하게 나를 소개할  있을까.            





    

 말은 점점 줄어들고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있는 요즘, 나 자신과의 관계부터 개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인데 자기부정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문제다. 생명을 도로 물리거나 명줄을 댕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살 때까진 살아야 하는데... 하는 희미한 의지 하나만 있다. 죽기 전까진 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부자는 안 돼도 되니까 제발 손에 넣고 싶다. 돈은 적더라도 어떻게든 먹고사는데 멘탈 문제는 정말 꾸준히도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슬슬 자기 파괴는 그만하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정말 나는 나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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