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자아의 경계
시작부터 또 병원 이야기부터 꺼내서 좀 그렇다. 나는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흐려서,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망을 보느라 힘든 거라고. 자아 형성이라면 청소년기에 다 끝나야 하는 문제 아니었나? 아니란다. 자아가 세상과의 경계선을 제대로 긋지 못한 채 자라서 증상이 자꾸 생겨나는 것이다. 자아가 확고하면 주변의 공격에 맞서 싸우고 지켜낼 수 있는데 무방비로 처맞고 끝없이 흔들려버리는 게 문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우스운 소리지만 병원에서도 직접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게 혼란스러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아가 불분명하다고 나와있었다. 역시 진단이 틀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뭘 할지, 뭐가 잘 어울리는지 항상 헷갈렸다. 막연히 회사에 다니려 했는데 맞지 않아 몇 년을 날리고 프리랜서의 길에 들어섰다. 또 긴 머리를 자주 했지만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고 결국 단발을 해버렸다. 오래전엔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다정한 애인을 만났지만 주변의 만류로 이별했는데 솔직히 후회하고 있다. 이렇게 난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니까 주변 말에 흔들리거나, X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지팔지꼰 타입이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일에 시작부터 주저하는 버릇이 생겼다.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괜히 에너지만 낭비할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내 판단이 옳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모든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줏대 없이 흔들리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뭘 해도 안 될 것만 같아 계획을 세웠다가도 무너뜨리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됐다.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무너진 자아를 지금 와서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나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을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이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주저하지 않고 확실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말은 점점 줄어들고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있는 요즘, 나 자신과의 관계부터 개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인데 자기부정에서 벗어나질 못하니 문제다. 생명을 도로 물리거나 명줄을 댕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살 때까진 살아야 하는데... 하는 희미한 의지 하나만 있다. 죽기 전까진 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부자는 안 돼도 되니까 제발 손에 넣고 싶다. 돈은 적더라도 어떻게든 먹고사는데 멘탈 문제는 정말 꾸준히도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슬슬 자기 파괴는 그만하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정말 나는 나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