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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Jan 04. 2022

우리는 투병중

모든 순간이 우울증이었다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멘탈 문제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온 사람이다. 혼자서 오래 버텨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병원을 다닌 지 이제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권했다고 한다. 마음이 많이 우울하고 불안하며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마침 나는 부모님의 여행에 따라간 상황이라 간략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약을 바꾸거나 병원을 바꿔보고 생각해 보란 것이었다.    





 

 병원마다 진단도 달라질 수 있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처음 병원에 발을 붙인 이래로 약 13년간 사회불안장애와 우울증의 진단 하에 있다가 더 큰 병원으로 옮기자 병명이 바뀌었다. 강박성성격장애와 우울증이었다. 그래도 크게는 다르지 않고 우울증이 뿌리 깊은 것도 맞고 불안이 있는 것도 맞았다. 다행히 새로운 선생님은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라고 약물치료를 계속 받으면 차츰 다시 사회에 나가는 시도를 해도 된다고 했을 정도다. 이렇듯 나처럼 문제는 예상과는 달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친구의 증상은 나와 비슷한 데가 상당히 많았다. 중학생 때부터 우울, 불안, 강박에 시달렸고 일상생활이 불가한 경험도 있으며 여전히 죽지 못해 살지만 쉽게 죽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까지. 고등학생 때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잘 구워진 삼겹살을 야무지게 쌈 싸 먹으면서 무심히, 툭 던진 멘탈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사이의 공통 대화 주제가 되어왔다. 약 15년간이나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병식 없이 우울증의 수렁에 깊이 빠져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회피하기도 하고 종종 망상을 겪으며 각자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가 주기적으로 문제들을 공유하면서 느낀 건, 역시나 증상이 정말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우연히 우린 서로를 알아봤고 지금까지 증상을 공유하며 인연을 맺어왔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린 서로 누가 먼저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는지를 지켜봤다. 한 사람이 빠져나가면 남은 사람을 도와주자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15년간, 불행히도 우리는 상태가 악화되면 되었지 크게 좋아지는 일은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가까스로 대학교까지 졸업했고 취업도 했지만, 빤스런을 반복하다 결국 프리랜서 내지는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교복을 입고 울고 웃던 우리는 벌써 30대다. 그 말은 둘 다 20대 동안 우울증 등으로 충분히 고통받았고 빠져나올 구멍도 못 찾았으며, 돈을 짭짤히 벌긴커녕 목숨만 붙이면 다행인 상태로 살았다는 것이다.     





      

 15년 전 삼겹살을 먹던 우리는 알았을까. 이 정신적 고통이 성인이 한참 된 뒤에도 이어질 줄을? 나는 솔직히 20대에 조금만 더 버텨내면 모든 멘탈 문제는 끝날 줄 알았다. 한때의 사춘기,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좀 눈에 띄는 불안한 정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낙관적인 전망들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번개탄을 피우려 했다며 반쯤 웃으며 내던진 말은 상대의 깊은 공감을 샀고, 같은 제목의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죽지 않으려 애쓴 것마저 똑같았다. 책 이름은 ‘죽은 자의 집 청소’였다.      





     

 만성 우울증 환자인 우리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가장 최악의 사례가 실린 책이었다. 고독사.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 지옥 같은 삶이라도 꼭 살아있자고 서로 다짐하듯 얘기했다. 그렇다고 헛된 희망은 품지 말자. 아마 우린 앞으로도 완치라든지 크게 좋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증상의 완화만 있을 것이다. 또한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쳤으니 죽을 때까지 우울증에 시달리며 약물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죽지 못해서 억지로 살지만 우리가 이런 불편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있을 이유라도 하나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되는 일도 하나 없고 다 끝내면 편안한데 대체 왜 살아있어야 하는 걸까? 여전히 풀지 못할 과제만 남은 것 같다.





 요샌 내가 말하는 토씨 하나마저, 내쉬는 숨소리마저 우울증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살아온 모든 순간이 우울증이었다. 역시 우울증은 뇌질환이라 참으면  되고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란 , 오래 겪어보니 맞긴 맞다. 이걸 누군가 우리가 10대였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스스로를 탓하고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는 여전히 투병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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