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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Apr 01. 2022

마법 같은 약 효과?

최근 달라진 일상생활






 지난달 둘째 주에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그동안 약효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선생님께 증량을 부탁드렸다. 약효가 아쉽다는 건 여전히 내가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지고 약간의 의욕상실을 계속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렸더니 먹던 약 중 한 알을 더 추가해 주셨다.   





   

 그리고 당일, 친구에게서 지인을 소개받았다. 우리는 카톡으로 인사를 하고 생활 얘기를 함께 나누었다. 사실 애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일상은 칩거와 블로그, 그리고 깨작깨작하는 공부, 약간의 쇼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상대는 애인을 찾는 모양이었고 아쉽게도 나와 맞지는 않았다. 지루해졌는지 7일 만에 연락은 끊겼다. 그렇지만 나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짧은 만남 덕분인지, 증량한 약 덕분인지, 맑은 날씨 덕분인지 몰라도 이때부터 살짝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답답한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참 신기하게도 약을 증량하자 그런 종류의 생각 자체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죽네 사네를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딱 그 말이 뭔지를 알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살아있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웃기는 말인데 겪어본 사람들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약의 효과가 더해져서인지 나는 바깥을 활기 있게 돌아다녔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고 책을 빌리러 도서관을 다녀오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본 그릭 요거트를 사러 마트를 들락거리고, 또 그렇게도 가기 불편했던 부모님의 시골집을 따라갔다. 예전에는 밖을 나가려면 정신적으로 온갖 피곤한 걱정을 무찌르고 힘겹게 나가야 했는데 이제 아무 생각 없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길을 가다 차에 치이지 않을까, 괴한을 만나지 않을까, 고층에서 물건이 떨어져 맞아죽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전보다 더 희미해졌다. 나갔다 들어와도 덜 지치기까지 하니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거기에 전에 없던 새 물건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서 난 쿠팡 멤버십으로 쇼핑을 즐기기 시작했다. 먹고 싶었던 막창도 사고, 집에 필요한 상비품도 주문하고 더불어서 한 달간 블로그 포스팅도 10개나 했다. 한동안의 지독한 슬럼프에 비하면 큰 변화였다. 물욕조차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 오히려 뭐라도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다는 게 너무나도 감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한 달에 5~10만 원을 쓰던 내가 20만 원을 썼다. 별로 아깝지 않은 지출이라고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내가 즐거웠고 활기차게 쇼핑을 즐겼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변화도 약 하나의 효과라고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이왕 약을 먹을 거면 제대로 효과를 보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많이 돌아다니고 먹다 보니 햇빛도 많이 쬐고 운동도 되었다.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힘없이 누워만 있던 내가 이렇게 활력 있게 생활하는 모습에 가족들도 웃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동안 어쩔 수 없었다고 밖에 변명할 여지가 없으며 지금이라도 좋아진 게 어딘가 싶다. 한 달간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있어 커다란 변화였고 다시 삶을 다져나가는 초석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는 아직까지 멈추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는 막연한 후회가 아니라 이해의 단계로 넘어간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 하며 털어버리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난 이 곳에 나의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 약간 무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시시콜콜해도 활력 있는 일상글도 써볼 계획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아니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만큼 그 평온한 일상의 귀함도 경험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 한 달의 변화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약인가, 새로운 사람인가, 계절의 변화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의 짬뽕 효과인가. 어쩌면 내가 욕심을 한 층 더 내려놓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려는 노력을 해서일지도 모른다. 봄이라 날씨가 따사롭고 좋다. 내 마음도 정신도 언제나 딱 오늘처럼 봄날만 같기를 바라본다. 주식도 봄날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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