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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Dec 19. 2022

우울증이라고 매일 우울하진 않습니다

환자 모임에 다녀온 이야기






 얼마 전부터 친구가 알려준 우울증 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샌가 잘 적응해서 서로 안부를 묻고 기분은 어떤지, 생활은 어떤지 등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재활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우울증을 겪은 사람을 본 건 나 자신과 친구 딱 두 명이었는데, 생각보다 세상에는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우울증이 있는 나조차도 몰랐던 사실을 또 알게 되기도 했다.     






 며칠 전엔 이 모임에서 처음으로 오프라인 단체 모임을 개최했다. 나도 여유가 되어 참가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을 만나보니 생각보다 의외인 부분이 있었다. 너무나도 밝아 보이는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나보니 ‘아니, 어떻게 이런 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이 밝고 에너지가 좋은 사람도 있었는데 내면적으로는 많이 힘들어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환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렇게 환자인 나도 갖고 있던 병에 대한 고정관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우울증 환자라고 매일, 항상 우울하진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유도 예고도 없이 불현듯 치고 들어와서 바닥까지 떨어뜨린다는 점도 같았다.  또한 늘상 우울한  아니라서 가끔은 내가 환자가 맞나 하는 의심을 품고 살았는데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중증의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일상을 힘겹지만 버텨나가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서 그런지 기분의 업앤다운이 스스로 눈에 띄게 느껴져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편으론, 슬프지만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오랜 세월 멘탈 문제를 겪으면서 살아왔는데 그들은 대다수가 어른이 될 때까지 어느 정도 순탄히 살다가 스트레스가 쌓여서 터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직장을 오래 다녔거나 잠깐 쉬는 정도였고 완전한 장기 백수는 나뿐이었다. 차라리 나도 다 성장해서 걸리면 병식이라도 빨리 가지고 치료를 했을 텐데 시간을 질질 끌었으니 안타까운 경우라고 볼 수 있었다. 병이 확대되어 불안장애와 성격장애까지도 진단을 받아봤을 정도라서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점점 내 안의 자기 연민이 커지는 걸 느끼기도 했다.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성장기에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었던 게 가장 아쉽고 지금도 방황하고 있는 게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면 슬프다.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우울증 환자라고 유머가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각자 비참하거나 털어놓기 어려운 얘기를 하면서도 담담하거나 또는 웃기고 유쾌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로 첫 대면이라서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겠지만 물어보니 업앤다운의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서 간신히 나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니 내가 평소에 주변에서 같은 환자를 찾기란 얼마나 어려웠던 일인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숨바꼭질하며 숨어있던 친구들을 찾은 듯했다.




      

 대화중 어느 분이 내게 건네주신 말씀이 정말 기억에 남았는데, 그동안 숨만 쉬며 10대에서 30대까지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한 게 없다고 말한 것에 답변을 해주신 거였다.


“그 고통 안에서 살아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뤄내고 잘해내신 거예요.”


이처럼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했다.    





 

 이렇듯 모임을 통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많은 걸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간들을 치유받는 것 같았고 내가 겪은 게 나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상태는 전보다 훨씬 나아져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과 달랐다. 듣고 있던 친구마저 깜짝 놀라는 걸 보니 같은 환자의 입장에선 굉장한 소식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줄 수 있는 팁은 그저 약을 잘 챙겨 먹고, 당연한 것에도 감사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라는 말뿐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체감되는 데까지는 각자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집으로 오는 내내, 모두들 서서히 건강을 되찾고 일터로 복귀하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모두 애쓰고 있고 잘하고 있어요.

때론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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