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아줌마적 사고
작년, 전회사의 회식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관리자분이 내게 어떻게 아주머니들 많은 회사에 오게 됐냐고 물어보셨다.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 풀기도, 나이가 3N살인데 괜히 새침 떨기도 웃겨서 ”에이 서른 넘었으니 저도 아줌마죠 뭐” 하고 털어넘겼다. 주변 언니들은 “이 아가씨가” 했지만 괜찮은 대답이었는지 관리자분도 살짝 웃으셨다.
살아남기 위해 털털해지려 노력해 왔다. 오랫동안 예민함을 달고 살던 내가 이렇게 너스레도 떨게 될 정도로. 역시 새침함은 빨리 내려놓고 세심함을 선택하는 게 낫더라. 좀 더 젊고 인기가 약간 있었던 20대보다도 진작 30대가 되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의 삶이 좋다. 게다가 투명 인간급의 인기도 편하다 해야 하나(?).
어린아이 둘이 있는 친한 친구의 남편분은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친한 친구의 친구 A와 나는 극과 극인데 A는 털털한 외모에 새침한 성격, 나는 새침한 외모에 털털한 성격이라고. 이거 내 칭찬이다 싶어 조용히 속으로만 인싸파티를 개최하였다.
친한 친구가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야 할 때 싱글 친구 A는 귀찮아하며 싫은 티를 내어 상처가 되었단다. 반면 나는 애들을 늘 이뻐해 줘서 고맙다고 함께 전해준 말이었다. 애들이 날 싫어하지 않아서 따로 시간 내기 힘든 워킹맘 친구랑 같이 만날 수 있으니 좋은 건 난데.
우리들이 자라온 시절,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은 꽤 많았다. 그만큼 어디든 가는 곳마다 우당탕탕 소란스러웠을 텐데 어른들이 아이였던 우리를 많이 이해해 주셨을 상황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런 과거에서 나온 생각으로 친구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시대 풍조가 바뀌기도 하고 아이들이 적다 보니 사람들마다 얘기가 다양하긴 하지만 아이며 어른이며 입장은 이해가 간다고 할까.
아침 창밖으로는 길 위의 어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지 울고불고하는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시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또 미스 아줌마적 사고로도 상황을 읽어본다.
아이는 엄마랑 떨어져서 불안하고 무서운가 보다. 저 시기를 잘 극복해야 학교며 사회생활도 잘해나갈 텐데. 엄마는 아이가 매일 생떼니 아침마다 힘들어 보인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많으시겠다. 뭐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나는 아직 미혼에 자녀도 없지만 아이인 적도 있고 어른(어설프지만)이기도 하니 각각의 생활엔 저마다 힘든 게 있다고 느낀다. 어설픈 아이와 어설프지 않은 척해야 하는 어른. 어설픈 아이가 성장해 그나마 덜 어설픈 어른이 되어가는 건 왜 이렇게 힘들고 슬플까.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미스 아줌마는 아이에게서 어른을 느끼고 어른에게서 아이를 느낄 때 왠지 모를 짠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어른스러워 보이려 애쓰는 아이의 모습과 어른이 어릴 때부터 지켜온 취향을 발견할 때다.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이해의 시선을 나이 먹고 안 게 이유가 아닐까 했다. 이제 나도 그런 눈이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