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친환경 지향법
요즘 제로웨이스트(또는 레스웨이스트), 미니멀에 꽂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뭐 치울 게 없나, 버릴 건 없나 하고 하루종일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정돈하느라 시간을 쏟는다.
쓰지 않는 물건은 주변에 나눔하고(미니멀), 필요한 물건을 사면 되도록 플라스틱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걸 산다(레스웨이스트). 평소 화장품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리필봉지에 담긴 바디로션을 구매했다.
그런데 내용물을 담을 공용기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약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러니까 그냥 다들 새용기에 담긴 새제품을 사고 버리는구나 싶었다. 나도 그랬고 어쩌면 다시 일을 시작하면 어느새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미니멀과 제로웨이스트는 왜 이렇게 번거롭고 어려운 걸까 싶지만, 사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아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엔 바쁘다는 핑계로 폼클렌저가 안 나오면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그러나 반으로 자르면 상당한 양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덜어내고 깨끗이 씻어낸 용기를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한다고 해서 100% 재활용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그후엔 폼클렌저를 세안비누로 바꿨다. 지금은 샴푸바, 린스바, 대나무칫솔 등 친환경 제품이 우리집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내가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불편한 기분, 최대한 플라스틱이 안 든 제품을 써야겠다는 강박으로 대체품 탐색에 시간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친환경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에는 리필봉지도 나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샵의 리필스테이션에 공병을 들고 찾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지역 제로웨이스트샵에 가보면 종류가 많지 않아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다고 로션 한 병 리필로 담아오려고 서울까지 일부러 올라가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고 어려운 일이니 나의 고집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뭔가에 꽂힌다고 끝장을 보는 편은 아니지만, 친환경적이고 자연에 무해한 생활에 엄청난 갈망을 느낀다. 플라스틱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가능하면 다시 활용하고 리필해서 쓰기. 다음에 서울에 병원 갈 때 샵에 잠깐 들리기를 기약하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겠다.
외출할 때는 장바구니에 텀블러랑 빨대, 손수건 챙겨 나가는 정도로 타협하는 걸로 하자. 환경오염도 오염이지만 쓰레기 생각에 매몰되어 내 생활이 미안함과 불편함으로 가득차는 것도 오염이다.
그렇게 제로웨이스트와 미니멀, 나 사이의 거리감을 두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어떤 습관을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적당히 의식하면서 가볍게 실천하는 게 포인트니까 오버 금지 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