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과 절제 그리고 증명
퇴사 후 백수생활이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통장잔고는 마지막 퇴직금까지 받은 이후로 계산했을 때 550만원 정도가 줄어들었다. 주로 먹는다고 썼다. 이런 와중에도 X팡으로 생필품 쇼핑을 하는데, 어느 날 같은 계정으로 쓰고 있는 엄마가 말씀하셨다.
“X팡 신용카드 만들어 쓰면 포인트 많이 준다더라. ”
신용카드라곤 단 한 장뿐이고 한 달에 딱 만원만 써서 포인트 천원을 돌려받고 있었다. 그런데 수입이 없고 재산도 적은데 어떻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나 싶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쉴 때 발급을 한 번 거절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신청이나 해봐.”
신청하고 나니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카드 상담원 분이셨다.
먼저 회사를 다니거나 수입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아니요.
내 명의로 된 집이 있는지. 아니요.
보증금 있는 월세를 내고 있는 상황인지. 아니요.
아, 어렵겠다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6개월 이상된 300만원 이상의 예적금 통장이 있는지였다. 예스!
다행히도 회사 다닐 때 월급 모아 묶어뒀던 500만원의 1년 정기예금의 만기일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생각났다. 상담원 쌤은 예금잔액증명서와 통장사본을 보내주면 발급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통화를 끊고 즉시 모바일 뱅킹앱으로 두 가지 서류를 파일로 저장해서 상담채팅을 통해 전송했다.
그리고 나니 순차적으로 카드사에서 신용정보 조회 후, 발급이 승인되었다. 신용점수 KCB는 1000점, NICE는 931점으로 평소 잘 관리해 놔서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체크카드 위주로, 신용카드는 조금만 쓰고 대금은 선결제하는 습관이 도움이 된 것 같다.
X팡 신용카드를 받고 결제수단에다 저장해서 주로 엄마가 쓰시기로 했고 나는 되도록 안 쓰는 방향으로 마음을 먹었다. 20대 중반에 첫 신용카드를 쓸 때 포인트가 욕심나서 10만원 연회비 내고 실적 채우려고 과소비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리볼빙까지는 쓴 적이 없지만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싶다.
지금 소득은 없어도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신용이 있다는 점과 자신의 절제력을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다. 어쨌든 신용카드는 죄가 없고 내 손가락을 늘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무직이지만 신용관리는 해놓으니 다행이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