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있으면 사서 담아두게요
2년 전, 전회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백수 주제에 갑자기 샛노랑한 명품지갑을 샀다. 이유는 단순히 큰돈 쓰고 돈이 줄어야 막무가내로 일하러 나갈 것 같아서였다. 그 효과는 좋았고 한 달도 안 되어 전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샛노랑한 지갑은 60만원 중반대였는데, 재직하며 벌어들인 돈은 그것의 40배도 넘었으니 매우 좋은 투자효과였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일하며 돈이 들어오자 씀씀이가 커져서 70만원짜리 무선청소기와 폰도 척척 사버렸더니 이제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보려면 더 큰 소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품 가방을 살까 하고 알아보니 역시 많이 비쌌다. 또한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사치품이어서 들고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60만원의 샛노랑한 지갑도 외출시 잃어버릴까봐 조마조마해서 패딩 속주머니에 넣어두거나 수시로 확인할 정도니, 이런 소심한 내가 떡하니 럭셔리 가방을 내놓고 다닐 수 있는 그릇이 되느냔 말이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흔해질 정도로 값비싼 외제차도 많은 시대지만, 그 소유자들은 상당히 담대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떡하니 나 이게 있어 하고 밖에다 보여주는데는 위험도 따르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 치안이 좋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처럼 조심스럽고 다소 촌스러울 수 있는 생각으로, 내가 가진 유일하고 작은 럭셔리상품을 살포시 잡고 자신의 그릇을 가늠해 본다. 음, 나는 부내를 풍기는 일에는 안 맞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값비싼 가방을 찾아보는 걸 그만두었다.
가끔 꺼내면 “앗 샛노랑!” 하며 예쁘다고 말해주는 친한 언니의 눈을 피해서 민망함에 지갑을 재빠르게 속주머니로 넣어버릴 정도니, 이번엔 티나지 않는 소비를 찾아서 일하도록 자극하는 수밖에 없다. 투명인간 지향자에게 셀프자극적인 소비란 뭐가 있을까? 멀리 여행을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