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지만 실패

by 신의손






나의 20대 시절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현모양처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내가 살던 그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녔어도 여자는 결혼을 하면 무조건 사회생활을 끝내고 내조를 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지금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현모양처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취집을 포장해 현모양처라고 했을 것이다. 경력단절여성으로 13년을 살아왔던 경험을 타인에게 이렇게 적을 날이 온 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그 이유는 좀 더 빨리 경력단절을 끝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버려진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등쌀에 못 이겨 29살에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옆에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와 다른 성향의 이 남자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가진 건 없어도 재미있고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하니 둘이 벌면 먹고는 살겠다 싶었지만 그건 나의 망상이었다. 결국 2002년 월드컵 같이 보자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간절히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었지만 그 노력은 나만의 노력이었다.


남편은 산부인과에서 잡아 준 임신 유력한 합방 날짜에 술 먹고 뻣어나, 약속을 만들어 늦게 오거나 온갖 말도 되지 않는 핑계라는 핑계는 다 만들어 한 달에 한번 잡은 날짜를 몇 달째 어겼다. 인위적인 탄생으로 자신의 2세를 만들기 싫다나 어쩠다나. 생리 예정일이 지날 때마다 임테기를 들고 화장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왜 울 곳은 집에서도 화장실 인지. 속도 모르는 시부모님의 무언의 압박을 견디며 시댁에 갈 때마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문제가 아녔다고요 진짜. 어렵게 임신이 되었고 태동과 심장 뛰는 소리도 듣고 뱃속에서 잘 키우기만 하면 되는 6개월 차에 아이의 심장이 멈추고 말았다. 내 사주에 없는 딸이 잠시 왔지만 하늘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흘러갔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뽀얀 얼굴에 무쌍의 큰 눈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첫째 아이는 내가 원했었다. 아이라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생각하면 남편이나 나나 둘 다 그때 잠시 미쳤었던 게 분명하다. 우리 집에서 사춘기와 갱년기가 매일매일 싸우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었다. 여자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아줌마로 넘어가고 있었다. 여자 사람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3의 성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