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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Aug 14. 2024

변기에 무릎을 꿇은 날.

살아서 집에 오기.

 몇 년 전 출근하면서 지하철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공황장애 증상도 나타나고 정신이 혼미해서 식은땀이 나고 토할 것 같아서 목적지가 아닌 지하철역에 내려 계단을 네발로 기어올라 겨우 개찰구 앞에 섰지만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지면서 개찰구에 부딪혀 입술이 터졌다. 지하철역무원들이 달려왔고 119가 도착했다. 다행히 활력징후는 정상이었고 보호자를 부르고 병원으로 가자는 구급대원에게 나는 회사로 간다고 했었다. 그렇게 지각을 해 회사에 도착했고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나에게 수액을 놔주고 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 갔다.  게임 속 어드밴처 주인공 같던 그날 출근 때 입었던 원피스는 몇 년간 입지 않았다. 그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그날이 생각나 지하철 문 앞에 서서 긴장을 하게 되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약간의 조짐이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기운이 빠져 흩어지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재유행하는 코로나는 아닌지 아침, 저녁으로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지만 다행히 음성이었다. 무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주말을 지내고 온 월요일은 화장실도 못 갈 만큼 정신이 없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오전에 맞은 수액은 딱 3시간 나를 평온하게 했다. 덕분에 급한 업무를 거의 다 처리해 낼 수 있었다. 내가 아프지 않고 평온하면 내 할 일을 하면 되지만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게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직원들까지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오심증상은 더 심해졌다. 결국 화장실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엇이라도 나오길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기운이 없어 화장실을 나와 문 앞에 앉아버렸다. 수액을 꽂은 채 앉아 있던 나를 보고 놀란 직원들이 수액에 진통제를 추가했다.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파왔다. 결국 직원들이 나를 부축해 눕혔다. 사실 나는 7년 동안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눕지 않았다. 어떻게든 내 책상에서 해결해 왔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힘들어서였는지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을 만큼 기운이 없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사소한 냄새에도 곧잘 오심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원인이 되는 냄새를 알면 조심할 수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러나 원인은 찾을 수도 없고 퇴근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겨우 퇴근시간 30분을 남기고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아파도 자식밥은 챙겨줘야 하니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집까지 30분 넘는 시간을 내 몸이 견뎌줄 지도 걱정이었다. 퇴근시간 지하철은 앉아 가기가 힘들다. 운이 좋아 앉아간다 하더라도 한 여름 옆자리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까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문이 열릴대 마다 공기가 순환되는 문쪽에 서서 왔다. 

 살려서 집으로 보내려는 직원들의 노력 덕분인지 침대에 누워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자 몸이 살아났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긴 해도 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회사에서 누워 있는 그 시간도 편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오고 건물밖에서 들리는 차소리와 바람소리까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던 것들이 아프니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덮쳐왔다. 사람이라 꼭 내가 겪어봐야 이렇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발소리, 말소리와 지나가면서 무심코 내뱉는 숨소리까지 아픈 사람에게는 천둥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양쪽 팔에 주사자국으로 멍이 든채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했다.  얼굴의 화장만 대충 지우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불타는 금요일이지만 저녁 7시가 좀 넘어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쯤 몸이 나를 깨웠다. 이제 살아났으니 몸을 살릴 연료를 넣어달라 내 뱃속이 요동을 쳤다. 800g이 빠졌다. 오랜만에 보는 44kg이었다. 냉동실에 만들어놓은 오트밀죽이며 국을 데워먹고 씻고 나오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일요일밤을 보냈다. 




 주말을 무겁게 보내고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컨디션은 돌아왔다. 두통은 계속돼서 약은 먹어도 수액을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금요일 사경을 헤매던 나를 본 직원들은 멀쩡한 나를 보며 다행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 말했다. 마누라는 아파도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고. 그러나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아무리 아파도 자식밥은 해 줘야 하니 쉴 수가 없다. 지난 추석처럼 호텔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을 뿐이다. 


 역시 사람옆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직장이 있고 살려서 집으로 보내준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차례 아프고 나니 많이 겸손해졌다.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인다. 그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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