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의손 Aug 20. 2024

[오늘의 명언] 자식이라고 애정의 깊이는 같지 않다.

딸보다 늘 아들

 지난주 1년에 한 번 모이는 형제들의 모임이 있었다. 증조할아버지제사와 할아버지의 제사 그리고 엄마의 생일이 같은 날이다. 이런 오묘하고 애매한 상황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리가 되었다. 2남 2녀인 우리 4형제는 49:51로 엄마의 생일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보통은 오빠네로 엄마가 오시지만 엄마의 개인적 일정으로 인해 형제들이 시골로 가게 되었다. 1년에 한 번은 모여서 외가에도 가고 13명의 아들, 딸, 며느리, 손자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회포를 푼다. 동생네에 붙어 간 나는 짐가방을 내려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며느리들에게 청소까지 시킬 수는 없어 화장실과 거실, 방을 청소하고 거미줄도 걷어 냈다. 나와 여동생이 있을 때는 며느리들은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반가움에 즐거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밤에 되자 엄마가 이불을 꺼내기 시작했다. 오빠는 허리가 아파 거실에 있는 침대소파에서 자야 하고 쇼파 아래는 새언니와 아들 두 명이 자야 한다 말했다. 아들과 손자만 눈에 보이는 엄마가 서운했지만 참았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새언니와 올케에게 악을 쓰는 추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허리 한번 못 펴고 일만 한 나의 이부자리는 현관문 앞까지 밀려났다. 사람들이 화화장실을 가려면 나는 또 그 자리에서 조차 밀려날 것이 뻔했다. 결국 그동안의 서러움들이 몰려와 나는 소리쳤다.


"나도 허리 아프다. 나도 집에 가면 침대에서 잔다. 화장실문 앞에 누울까?"


소리치는 나에게 가족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눈에는 아들자식 밖에 보이지 않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빠의 이부자리만 손볼 뿐이었다. 거실 불이 꺼지고 냉장고 아래에 누웠다. 이렇게 까지 했으면 오빠는 거실 쇼파침대에 누워야 했다. 내가 한소리 해서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쇼파침대에 누울 마음이 없었는지 오빠는 거실에 내가 늘 눕는 그 자리에 누었다. 나는 그 자리에 눕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늘 자신을 챙기고 허드렛일을 하고 수발을 드는 것은 나와 여동생이지만 돈과 마음을 쓰는 쪽은 늘 오빠다. 장남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자기 것은 당연히 자기 것이고 엄마 것도 자기 것인 참으로 편리한 장남의 존재를 새삼스레 또 느꼈다. 오랜만에 만나 내가 잠시 긴장을 놓은 탓인지 나이 들어 총기가 흐려진 것인지 그런 상황을 만든 내가 싫었다. 


 사람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또 상황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기도 하지만 나의 엄마는 해당이 없는 것 같다. 알고 있었지만 늘 이런 상황은 새롭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자식이 4명이지만 수발자식과 애정을 쏟는 자식은 극명하게 갈린다. 70이 넘은 엄마에게 좋은 말만 하고 싶었지만 이번엔 실패했다. 내가 '나쁜 년'이 되었다. 






그래 자식이라고 똑같은 마음을 쓰는 건 아니니까. 섭섭하지만 나는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다독일 수밖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그렇게 내가 잘못한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언제나 큰딸은 참고 참고 또 참고 캔디일 뿐이니까. 아들만 키우는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피를 통해 내려오는 장남에 대한 인식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엄마가 애정하는 만큼 장남인 오빠가 부흥해 주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엄마는 아직도 모르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방아전 한 장 묵어 보이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