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주연상
남자들만 있는 나의 세상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제3 아니 제4세계 그 어디쯤인 것 같다. 몸이 부서지고 녹아내리는 것처럼 힘들어도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내 자식과 시어머니의 자식인 남편을 보면 정말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몰려와 뒤통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때가 많다. 그래도 내 자식은 참아지는데 남의 자식은 힘들다.
며칠 전 컨디션도 괜찮았고 크게 할 일도 없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며 슬쩍 본 부엌의 모습이 생각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부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아픈 척을 해야 하나? 바쁜 척을 해야 하나? 어떤 게 잘 먹힐까?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나는 전생에 배우였는지 어질러진 부엌을 가뿐히 지나 안방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직행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암막커튼을 쳤다. 몸이 아파야 한다. 안 아프지만 아픈 척을 해야 한다고 나의 뇌를 속여야 했다. 운동도 거른 채 침대에 누워 있는다는 게 잠이 들었는지 8시가 넘게 밥을 차리지 않는 나를 큰아들이 보러 왔다. 나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누웠다 일어나니 힘도 없었다. 나는 아픈 사람이 되었다. 첫 번째 관문인 큰아들은 무사히 넘겼다. 큰아들에게 싱크대 정리를 시켰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으고 설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저와 그릇을 헹궈 크기별로 정리만 되어도 시간이 절약된다. 큰아들은 설거지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보다는 쉬운 정리만 시켰다. 그리고 밤 12시가 되자 독서실에 갔던 둘째 아들이 들어왔다. 먹을 걸 찾는 하이에나처럼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달려왔다. 암막커튼이 쳐진 침대에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누운 나를 보더니 조용히 나갔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부엌에 어질러 놓은 쓰레기 정리를 부탁했다. 사실 그 쓰레기의 출처는 대부분 둘째 아들이다. 설거지가 서툰 둘째 아들에게도 잊지 않고 설거지는 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렇게 나는 둘째 아들도 클리어했다.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닌 부탁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를 했다. 결국 싱크대 안에 그릇들만 예쁘게 정리된 채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했다. 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의 컨디션을 묻고 저녁은 알아서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햄버거나 편의점 음식을 먹겠다는 말에 저녁밥은 해줄 수 있다고 하니 알겠단다. 퇴근해서 설거지를 하고 두 아들들의 저녁을 차렸다. 아직도 두 아들들은 엄마의 쇼를 모른다. 두 아들들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덕분인지 음식물쓰레기도 정리가 되었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담겨 있었다. 내 자식은 이렇게 되지만 시어머니의 자식은 이렇게 되지 않는다. 엄마는 무조건 천하무적이어야 하지만 또 가끔은 아픈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숨을 쉬며 살 수가 있다. 특히 남자들만 득실대는 이 삭막한 곳에서는 눈으로 보여주고 확인시켜 줘야 안다. 또 언젠가 힘들고 지치면 아픈 척을 할 것이다. 또 병원에 입원을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혼자사 호텔에서 명절을 지낼지도 모른다.
일단 나부터 좀 살고 보자. 엄마이기 전에 인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