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경력단절 13년의 시간은 세상을 뭉쳐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들만 차고 넘쳤다. 팔꿈치로 기고 무릎으로 버티며 나를 세상으로 내 보내야 한다 악으로 버티고 있었다. 내 입맛에 맞는 꿀알바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다못해 생산직 공장에 서류를 넣어도 경력자를 구한다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은 가질 수 없다면 경제활동에 목표를 두었다. 나는 과거 산부인과에서 2교대를 하며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이라는 곳에 대한 저항이 적었다. 상담 관련 계약직으로 근무 중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나의 11개월짜리 근로계약은 종료가 되었다. 근로계약 종료 후 재입사하기로 구두계약은 했으나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또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장에 나를 내놓고 팔아야만 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최대한 비싸게 사줬으면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장점을 쥐어짜 내야만 했다. 많은 자격증들은 재능과 노력을 의미했고 특출 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서류작성능력과 병원 근무 경험이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곳이어야만 했다. 내가 꼭 필요한 곳. 그렇게 나는 호스피스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글로만 읽은 호스피스라는 직장은 다닐만한 곳이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타 기관의 호스피스 전담 사회복지사로 지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신규나 초보자도 가능하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었었다. 최종합격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적어도 면접 연락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라면 호스피스에 지원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는 않았을 텐데 호스피스를 몰랐고 암환자를 몰랐고 암환자의 가족들을 몰랐다. 암성통증을 몰랐고 섬망을 몰랐다. 그리고 호스피스에서 해야 할 사회복지사의 서류의 실체도 몰랐다.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다. 어쩌다 출근하고 보니 그곳이 호스피스였다.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다니다 보니 지금은 호스피스에서 7년 차 전담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절대 사회복지사는 되지 않겠다 호언장담하던 내가 사회복지사로 그것도 호스피스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장담은 하면 안 된다. 앞일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